◆몽 페르랭 소사이어티는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모임을 뜻한다.

경제학계로 설명하면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시카고학파'가 중심이다.

기원은 지난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스트리아 태생의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Hayek)는 학계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펼쳤던 것처럼 망가진 경제에 정부의 개입은 정당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하이에크가 설 곳이 없었다.

이런 와중 하이에크는 지난 1948년 스위스의 '몽 페르랭'에서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학계 분위기가 반영하듯 출판 기념회에 온 사람은 36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굳게 믿었던 그들은 해당 지역 이름을 따 몽 페르랭 소사이어티'를 출범한다.

계획경제ㆍ수정자본주의의 허상에 대해 비판을 할 체계적 조직을 만든 것이다.

25년이 지나고 이들에게 기회가 왔다.

1973년, 석유수출기구(OPEC)에서 원유 가격을 17% 올리겠다고 전 세계에 공표하게 된다.

원유가격은 급속도로 치솟게 됐고, 미국을 비롯해 중동에서 석유를 수입하던 국가들은 물가 폭등을 겪는다.

물가 상승은 판매 부진을 낳았고 공장은 돌지 않게 됐다.

자연히 실업률은 상승했다.

그동안 수정 자본주의자들이 신봉하던 '고물가=경제활황' 공식을 뒤집는 현상이었다.

당황한 케인스학파에 몽 페르랭 소사이어티는 반격을 시작했다.

당시 경제를 살리려고 돈을 쏟던 미국 정부를 비판했다.

몽 페르랭 소사이어티의 대표자인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은 당시 "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통화량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고정환율제가 아닌 변동환율제 도입을 촉구하는 등 개입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했다.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은 자유주의자들을 대표해 각각 1974년과 1976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또한, 이들의 경제정책은 각각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에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른바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라 일컫는 신자유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두 수장은 민영화를 가속하고 감세정책을 시행하는 등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최근 경기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몽 페르랭 소사이어티가 또 몇몇 정부에 비판을 가했다.

복지국가로 향하는 정부가 그 대상이다.

앨런 밸처 카네기멜런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9월 열린 몽 페르랭 소사이어티에서 "유로존 재정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복지 중독증' 때문이다"면서 "인기영합 복지정책은 그만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몽 페르랭 소사이어티 멤버인 샘 펠츠만 시카고대학교 교수는 "늘어난 세금과 규제는 사회주의와 다를 게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증권부 최진우 기자)

(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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