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연초부터 경제계가 환율문제로 어수선하다. 연일 가파르게 떨어지는 엔-원 재정환율로 수출기업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가운데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환율 문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경제분과 일부 인수위원 등이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일단 침묵을 지키고 있다. 중소기업 등 사회적 약자에 우호적인 박당선인이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를 앞두고 서울외환시장의 원화 절상에 대한 기대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박당선인이 하루 빨리 환율 등을 포함한 거시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밝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환율 정책은 결국 국가 최고지도자의 통치 이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인 이른바 '아베 환율'도 결국 통치행위의 결과물이다.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취임과 동시에2%의 중기적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제시하며 무제한적인 양적완화를 시사했다. 아베총리가 경제 통치행위의 초점을 양적 완화에 집중하면서 엔화의 값은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달러-엔 환율은 지난해 1월2일76.89엔에서 지난 18일 기준으로 90.08엔까지 17%나 절하됐다. 유로당 엔화값도 99.5엔에서 119.98엔으로 21%나 하락했다. 엔원 재정환율도 1,491.12원에서 1,173.23원으로 27% 떨어졌다.

때마침 도요타가 전세계에서 자동차 점유율 부문에서 1위를 재탈환했다는 소식이주요 외신을 통해 타전됐다. 아베총리의 도발적인 환율정책이 일단은 일본 수출 기업 등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됐다.

엔화가 가파르게 절하되면서 환율 갈등은 이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실력행사를 동반한 총성없는 전쟁 형태로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부문에서 일본과 경쟁 관계인 독일이 당장 발끈하고 나섰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17일(현지시간) 연방하원 연설에서"일본 신정부의 정책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유동성 과잉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일본과 함께 자동차 부문에서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미국도 민감하다. 미국 자동차 '빅 3'의 이익을 대변하는 싱크탱크인 전미 자동차정책위원회(AAPC)의 매트 블런트 회장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아베 정권이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일본의 과다한 엔저가 주요 교역국의 희생을 가져오는 것"이라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상응하는 보복이 가해질 것임을 경고하라"고 덧붙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같은 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세계 통화 전쟁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라가르드는 "나는 그것이 통화 쪽이 됐던 뭐든 간에 전쟁은 혐오한다"면서 "(수출 촉진을 겨냥해) 경쟁적으로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력히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환율이 통치 이념을 반영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5년전 '비지니스 프렌들리(businesss friendly) 정책'을 표방하면서 수출 기업에 유리한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다. 고환율 정책으로 물가상승과 양극화 심화 등 많은 많은 논란도 있었지만삼성전자와 현대차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박 당선인도 이제 좀 더 분명한 어조로 환율 정책에 대해 말할 때가 됐다. 수출의 경제성장률 기여도가 2011년 기준으로 57%에 육박하는 우리나라 경제 체질을 최우선시할지, 아니면 빈털터리가 된 가계 부문의 구매력을 감안할지.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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