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정계 복귀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그의 지지율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두달 뒤 총선에서 그는 상원을 장악하며 선거의 제왕임을 입증했다. 그리드록(정치권력 분점과 그에 따른 교착상태)으로 접어든 이탈리아 의회에서 이제 경제 개혁을 위한 어떤 입법도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베를루스코니가 단기간에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부동산세를 환급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이었다.

마리오 몬티 총리는 경제개혁안의 하나로 이탈리아인이 보유한 모든 주택에 부동산세(IMU)를 과세하기로 했다. 그동안 2주택에만 부과되던 세금을 모든 주택 소유자의 부담으로 돌린 것이다. 이를 통한 세수 규모는 연 40억유로(약 5조6천억원)로 세금 폭탄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는 유세 과정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부동산세 신설을 계기로 대다수 여론이 몬티 내각을 등졌다는 것을 간파한 결단이었다. 당시 몬티 총리는 유럽연합(EU)이 선호할 만한 제스처를 보여주고자 부동산세를 신설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이기면 세금을 다 돌려주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최근에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유권자들이 세금을 받게 하겠다고 말했다.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액수를 떠나 매우 매력적인 공약이었다. 세금환급을 하려면 유럽연합(EU)이 이탈리아에 적용하는 법규가 거부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베를루스코니는 유권자에게 세금을 받으려면 EU와 맞서야 한다면서 선거 구도를 친(親) EU 대 반(反) EU로 선점해 승리했다.

베를루스코니 개인의 정치적 욕망은 충족됐을지언정 금융시장은 크게 낙담했다. 씨티그룹의 스티븐 잉글랜더 외환 스트래티지스트는 총선 결과에 대해 "유권자들이 옳은 선택을 하지 않은 첫 번째 유럽 선거"라면서 "선거 결과는 시장이 두려워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다음날 치러질 이탈리아 국채 발행 결과를 시장은 매우 우려하고 있다. (국제경제부 이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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