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탈리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둔 오성운동(M5S)의 베페 그릴로 대표는 유세기간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에서 "전 유럽이 우리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럽, 그리고 시장은 이탈리아가 경제 개혁을 중단하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탈퇴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총선 결과가 나오자 이런 걱정이 커지면서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10년물 발행 금리가 지난해 10월의 5.5% 수준에 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는 올해 4천200억유로(약 597조원)를 조달해야 하는 이탈리아에 부담스러운 숫자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새로운 채권 매입 프로그램인 'OMT(outright monetary transaction)'를 사용해 지원에 나설 수 있지만 유럽연합(EU)이 요구하는 긴축을 이행하지 않는 한 이탈리아는 OMT 덕을 볼 수 없다. 지난해 스페인도 긴축을 피하고자 OMT를 거부해 시장을 불안하게 만든 바 있다. 총선 결과로 볼 때 이탈리아에는 긴축 노력을 더는 하기 싫다는 여론이 상당히 형성돼 있다.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의 앤드루 로버츠 헤드는 "ECB의 지원 여부는 해당국이 지시하는 바를 이행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ECB 지원은 이제 이탈리아 국내 정치에 의해 갈기갈기 찢겼다"고 말했다.

이탈리아가 ECB의 지원(그리고 긴축)을 거부한다고 할 때 유로존 전체가 위기를 피할 유일한 방법은 이탈리아가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탈리아의 탈퇴가 유로존에 큰 상흔을 남길지언정 이탈리아로서는 생각해볼 만한 방안이라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경제 펀더멘털이 강해 유로존을 떠나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이론적으로는 리라화 체제로 이행할 때 자금 조달 위기를 피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의 민간 자산은 9조유로에 달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265%로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보다 낮다. 또 이탈리아는 거의 균형 재정을 이루고 있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과 달리 국제 투자 포지션도 적절하다. 결국 이탈리아에 긴축을 압박하는 시도는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를 촉발해 유럽통화연맹(EMU) 전체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긴축에 반대하는 이탈리아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국제경제부 이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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