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면1 = 지난 9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끝났을 때 금융시장은 신용평가사들의 눈을 주시했다. 누더기 협상으로 끝난 EU 정상회의를 이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재정협약과 유로안정화기구(ESM) 조기도입 등 새로 협의한 내용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당장 획기적인 변화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장면2= EU 정상회의가 끝나고 나서 국제금융시장의 눈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로 집중됐다. S&P가 이미 EU 정상회의 전부터 회의 결과를 보고 등급을 조정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S&P의 손에 모든 운명이 달렸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 금융시장을 흔든 건 무디스였다. 무디스가 S&P에 앞서 선수를 친 것이다. 무디스는 정상회의가 끝난 지 이틀 만에 EU 국가의 신용등급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에 질세라 피치도 유럽의 경기침체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냈다.

S&P에 쏠렸던 국제금융가의 시선은 무디스와 피치로 이동했다. 우물쭈물하던 S&P는 선점 효과를 모두 잃고 말았다.



국제신용평가사는 정치적인 동물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면 존재의미가 없다. 3대 신용평가사들의 치열한 경쟁은 위기를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는 신용평가사들의 부당한 평가에 아픔을 곱씹었다.

신용평가사들은 금융위기의 피를 먹고 자란다. 그러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됐다. 이 무소불위 권력의 칼끝은 유럽 전체를 향하고 있다.

지난주에만 셀 수 없이 많은 은행과 나라가 신용등급을 강등당하거나 경고를 먹었다.

벨기에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6개 나라는 피치의 경고장을 받았다. 피치는 프랑스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려 등급 강등을 예고했다.

무디스는 벨기에의 신용등급을 'Aa1'에서 'Aa3'로 두 단계 강등시켰다. 피치가 벨기에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S&P는 연말까지 결과물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신용평가사들의 경쟁 심리를 고려하면 유로존 국가의 등급 강등 가능성은 매우 크다. 선점 효과를 잃은 S&P가 몸값을 높이려고 더 자극적인 발표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논란의 중심인 프랑스 신용등급을 어떻게 매길지가 중요하다.

프랑스 등급이 최고등급인 AAA를 잃게 되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등급도 덩달아 떨어진다. 유럽 국가들의 자금 조달 부담은 더 커진다. 유럽 국채시장을 중심으로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은 이에 연쇄 반응을 보일 것이다. 연말 국제금융시장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셈이다. 바람막이를 해줄 구원군도 없다.

이런 위험을 잘 아는 프랑스는 영국을 걸고 넘어졌다. 프랑스보다 재정상황이 더 나쁜 영국을 그대로 두면 논리적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S&P가 프랑스 신용등급을 조정하려는 건 남유럽 국가(PIGS)에 노출된 위험때문이다. 영국은 그 위험이 프랑스보다 작다. 논리 싸움에서 프랑스가 S&P를 이기긴 어려워 보인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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