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키프로스 구제금융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네 번째로 전면적 구제금융을 받게 된 키프로스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과 달리 예금자들로부터 구제금융의 상당액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니코스 아나스티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부실해진 2대 은행을 모두 회생시키고 소액 예금자의 희생으로 외국인 고액 예금자를 보호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그는 지난 16일 모든 예금자를 대상으로 일회성 세금을 부과하고 국제 채권단인 트로이카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방안을 발표했다. 키프로스 안팎에서 반발이 거셌다. 키프로스인들이 'NO'를 적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시위에 나섰고 유로존도 굳이 소액 예금자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는 자세를 보였다.

아나스티아데스 대통령은 24일 구제금융 논의의 장을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유로그룹)에서 정상회의로 옮겨 긴급 정상회의를 소집하려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사임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키프로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주장을 관철하고자 했다. 하지만 유로존 정상들은 양보를 거부했다. 정상들은 뱅크런(예금 대량인출)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자신감을 얻은 듯 보였다.

결국 키프로스 정부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긴급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25일, 고액 예금자의 손실을 늘리되 소액 예금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구제금융 조건을 수정했다. 키프로스로서는 지키려던 은행 두 곳 가운데 한 곳을 잃게 됐고 더 많은 자금을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부담을 안은 채 구제금융을 받게 된 것이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키프로스 예금 과세로 조달할 예정이었던 58억유로라는 숫자는 잊으라면서 이 숫자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키프로스에 제공하는 자금은 100억유로로 고정되는 반면 라이키은행에서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예금만 42억유로가 구제자금에 합산될 것으로 보인다. 또 25일에 나온 유로그룹 성명을 보면 라이키은행의 청산 비용, 키프로스은행의 자본 확충 비용 모두가 주주와 채권자의 주머니에서 마련돼야 한다. (국제경제부 이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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