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본래 시장이라는 곳이 위험(Risk)을 거래하는 곳이지만, 최근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통 위험을 거래하는 장으로 변질하고 있다.

유한한 인간이 시간에 내재한 기회비용을 각종 위험가치로 교환하는 대상이 이자율과 주가, 환율인데, 최근에 이 시장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을 위험가치로 환산되고 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작고 완전히 개방된 경제체제(small open economy)에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헤지(Hedge) 수단이 없이 살아야 하는 숙명들이다. 주초부터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꿈틀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삶이 이런 거래 대상물에 포함된 지 오래됐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특히 외국투자가 사이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투자의 기회'라는 인식이 슬금슬금 고개를 든다는 사실은 우리 금융ㆍ외환당국에도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을 더해 주는 일이다.

지금까지 나온 국내·외 정세보고서나 전문가들의 시각은 대체로 전면전이 불가능하며, 다만 국지적 충돌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정도다. 물론 긴장이 극도로 고조돼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금융시장의 영향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의 파장은 일본의 양적완화처럼 전체 금융의 수급에 중장기적 영향을 주는 재료로 작용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해외 언론을 통해 북한의 채권 문제와, '원자재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올해 70세의 짐 로저스가 북한의 동전 투자에 나섰다는 소식은 시선을 끌고 있다.

그동안 북한 채권은 남북 화해 분위기 때는 가격이 급등하다가, 최근처럼 대북 제재 강도가 커지면 거래가 끊기는 일이 반복됐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북한 채권은 정상적인 채권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이자 지급이 없고, 흡사 극도로 투기적인 상품으로 당첨 확률 0%에 가까운 '외가격 옵션'처럼 취급되기 때문이었다.

짐 로저스의 경우는 향후 북한이 없어지면 오를 거라고 판단하고 북한의 동전 싹쓸이하는 것 같은데, 그 탓인지 최근 이베이(eBay)에는 진짜 북한 금·은화가 자취를 감췄다는 후문이다. 그가 북한의 동전에 투자하는 이유는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희소성 때문이다. 미래 어느 시점에서 북한이 국가로 존재할 수 없게 되면 북한 동전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얘기인데, 한국의 원화 자산과 인근국가의 금융자산의 가치의 향방을 가늠하기에는 너무 어려우니까, 눈에 보이는 작은 실물에 투자해 기념 가치라도 건지겠다는 심산인 것 같기도 하다.

한반도의 운명과 관련해 아직은 이러한 미세한 조짐에 그치지만, 임계점을 넘어 큰 소용돌이에 가까워지면 더욱 대담한 포지션을 감행하는 투기꾼들이 판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금융ㆍ외환당국은 상황의 큰 흐름을 관리하는 데 온 촉각을 집중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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