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은둔의 제왕'(The Hermit King)으로 불렸다. 삼성이라는 초대형 그룹을 경영하면서도 공개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고 한남동에 있는 승지원에 주로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던 이 회장이 돌연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성전자 사옥으로 정기적으로 출근한 지 오는 21일로 꼬박 2년이 됐다.

이 회장을 공개석상으로 불러낸 것은 바로 '위기의식'이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실물경제로 전이되기 시작하자 이 회장은 정기적인 출근으로 그룹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승승장구'하는 등 삼성은 경기침체 속에서도 홀로 분전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출근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휴대전화 등 일부 사업에 지나치게 치우친 사업구조 때문에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 이 회장 출근에 높아진 '긴장감', 빨라진 '경영' = 이 회장은 지난 2011년 4월21일 서초사옥으로 처음 출근하며 "전 세계에서 우리와 관계없는 회사까지도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근 첫날부터 그룹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후 이 회장은 매주 2차례씩 서초사옥으로 출근하며 그룹 전반의 현안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특히 출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삼성테크윈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자 이 회장은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다"고 강하게 질타하며 그룹 전체로 강도 높은 경영진단을 확대했다. 이를 통해 비위가 적발되거나 실적이 악화된 계열사에 대해서는 CEO급을 망라하고 전례 없이 문책성 수시인사가 단행됐다.

이 회장은 다양한 임원, 사원들과 오찬 자리를 가지면서 '소통경영'을 통해 필요한 메시지도 직접 전달했다.

또, 경영효율을 위한 사업조정도 활발하게 추진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3명의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해 완제품과 세트부문 간 독립성을 확실히 보장했다. 또, 태양전지 사업은 삼성SDI로 옮겼고, 만년 적자사업이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은 세계 1위인 씨게이트에 넘겼다. 이와 함께 디스플레이 사업은 삼성전자에서 떼어내 독립 법인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이 회장 출근으로 그룹 전반의 대응 속도가 한층 빨라지면서 삼성은 어려운 대외경제 환경 속에서도 홀로 분전했다.

실제로 소니와 샤프, 노키아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이 실적 악화에 신음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까지 장악하면서 국내 기업 최초로 '200조원 매출-20조원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와 함께 리튬이온 2차전지와 중소형 디스플레이 패널 등에서 새롭게 1위로 도약하면서 삼성그룹이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분야는 20여 개로 확대됐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회장님이 정기적으로 출근하며 많은 사안을 직접 챙기다 보니 아무래도 그룹 전반의 긴장감과 대응력이 한층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 끝나지 않은 '위기감'…'미래먹거리'가 남은 숙제 = 이렇게 가시적 성과가 많이 나왔음에도 이 회장은 여전히 위기의식을 놓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작년 말 자신의 취임 25주년 기념식에서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었다"며 더 분발할 것을 촉구했다.

올 초 신년사에서도 "삼성의 앞길도 순탄치 않으며 험난하고 버거운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제는 지난 성공은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지난 6일에도 이 회장은 "안심해서는 안 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 회장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삼성그룹의 수익 구조가 불안정하고, 앞날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삼성그룹 매출의 70%가량은 삼성전자에 쏠려 있다. 삼성전자 역시 매출의 60%가량, 이익의 70%가량을 휴대전화 사업에 의존하고 있다. IT 산업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만큼, 작은 변화라도 제때 따라가지 못하면 한순간에 흔들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은 지난 2010년부터 태양전지와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 LED, 바이오,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 글로벌 경기 침체마저 길어지자 이 회장은 작년 중반부터 출근시간을 1시간 이상 앞당기며 분위기를 더욱 다잡고 나섰다. 또, 올 초에는 이례적으로 해외에 석 달가량 장기 체류하며 경영구상에 몰두하고 나서 지난 16일부터 출근 경영을 재개했다.

이 회장은 지난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포하기 직전에도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며 전략 수립에 몰두한 바 있다. 특히 올해는 '신경영 선언 20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올해도 출근경영을 이어가며 '제2의 신경영'을 선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어려운 대외여건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만큼, 이 회장은 올해도 출근을 통해 그룹 전체에 긴장감과 새로운 혁신을 주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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