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A은행의 한 모씨는 예전 영업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치민다.

"야 이 XXX야." 영업점이 아직 문을 열기 전 걸려온 전화에서 느닷없이 욕설부터 쏟아져 나왔다. 은행 자동화기기(ATM)에서 돈을 뽑을 수 없어 큰 불편을 겪었다는 고객의 전화였다.

흥분한 고객을 달래며 내역을 살펴봤더니, 고객이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한 탓이었다. 한 씨가 "가까운 영업점에 들러 거래 정지를 풀면 다시 돈을 인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해당 고객은 막무가내였다.

고객은 "나도 아는데 왜 문을 일찍 열지 않는 것이냐"며 "인터넷에 불편 사항을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었으니 지정하는 장소로 피해보상액을 가지고 오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까지 이어졌다.

최근 포스코에너지의 한 임원이 대한항공 기내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으로 서비스 직군인 '감정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언감생심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B은행의 한 직원은 "직원들이 은행 이미지에 흠이 갈까봐 고객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진상'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고성이나 폭언·욕설은 새삼스럽지 않다. 불만을 인터넷이나 SNS에 올리겠다고 협박하거나 특정 직원에게만 민원을 계속 제기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경우도 이젠 흔할 정도다.

지점 창구 여직원들은 남자고객의 사심 가득한 구애(?) 작업에 곤욕을 치르기 일쑤다. '반성문을 써오라', '오늘 기분이 꿀꿀하니 사랑스런 말로 나를 위로해달라', '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느냐' 등 상식 밖의 요구를 하는 고객이 많지만 직원들은 속수무책이다.

앞선 은행 직원은 "민원 건수가 영업점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진상 고객이더라도 참고 달래는게 대부분"이라며 "악성 민원인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를 하기도 하지만, 실제 고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직원 고충 해결을 위해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나 적극적인 해결보다 쉬쉬하며 덮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최근에는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가 금융업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어 분위기상 불편을 호소하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폭행 사건이 표면화된 항공사 승무원이 차라리 부럽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앞으로 승무원의 업무를 방해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규정이 신설된다.

다른 은행의 직원은 "서비스를 하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서비스를 받는 자세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산업증권부 문정현 이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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