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채권값 하락 거의 경험 못해



(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월가에서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채권시장 붕괴론'에 대비하는 투자자들은 얼마나 될까.

세계 최대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최근 451명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채권이 올바른 선택인지 확인하는 게 향후 1년간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라는 대답은 7%에 못 미쳤다.

전혀 관심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은 60%나 됐다.

금리 상승이 우려된다는 비율이 57%, 10년 전보다 채권이 더 위험해졌다는 답이 53%인 것과 달리 실제 대비를 하겠다는 투자자는 별로 없는 셈이다.

왜 이러는 걸까.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넷판은 14일(현지시간) 지난 30여년 동안 채권 약세장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 탓에 현재 채권 투자자들은 채권의 몰락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간단히 말해 투자자들은 '과거의 포로'여서 경험한 대로만 앞날을 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노스캐롤라이나 소재 앨리슨인베스트먼트의 데이비드 앨리슨 파트너는 "모두가 채권 약세장이 도래한다고 말을 해도 대부분 투자자는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WSJ는 작고한 유명한 투자전략가 피터 번스타인의 "시장은 기억은행(memory bank)"이라는 말로 이를 요약했다.

투자자들의 기대는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는 의미다.

번스타인은 주식의 배당수익률이 채권 수익률을 처음으로 밑돈 1958년의 사례를 자주 들며 이를 설파했다.

당시 월가의 똑똑한 이들의 예상을 깨고 주식의 배당수익률은 2008년까지 채권 수익률을 밑돌았다.

처음 겪어본 일은 예외적일 것이라는 생각의 함정에 시장이 빠진 것이다.

WSJ는 닷컴버블이 일었던 1990년대 말 투자자들이 주식 약세장의 장기화를 예상 못 했던 것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경험상 두자릿수 수익률이 줄곧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게 쉬웠다는 의미다.

그러나 닷컴버블 붕괴와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를 거치면서 지난 13년간 증시의 부침을 겪은 투자자들은 이제 주식에 대해서는 반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플랭클린템플턴의 설문조사에서는 37%가 장기 투자 목표 달성을 위해서 주식 보유는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지난 한 해 동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16.0% 올랐다는데도 31%는 작년 S&P지수가 하락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주식 약세를 자주 봐온 탓에 엄연한 사실마저 착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채권시장 붕괴를 상상할 수 있을까.

WSJ는 전문가라고 일반 투자자와 다를 건 없다고 봤다.

WSJ는 이러면서 국제공인재무분석사협회(CFA Institute)의 조사 결과,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의 평균 연령은 43세로 집계됐음을 상기시켰다.

30여년 전 마지막 채권 약세장이 끝났을 때 이들은 10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저널은 '기억은행'에 투자자들이 사로잡히는 것은 요즘 시대의 일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대공황 시기에 자라난 '디프레션 베이비(depression babies)' 세대는 당시의 경험이 여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게 그 근거다.

이들은 젊은 세대들보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는 경향이 덜 하고, 투자 위험을 떠안으려는 의욕이 떨어지며, 주식에 투자를 잘 하지 않는 특징을 보였다.

취리히 소재 웰러쇼프앤파트너스의 요하임 클레멘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투자 위험에 대한 태도는 주로 18~25세 사이에 경험한 시장 수익률에 따라 형성된다"면서 "이 기간이 투자자들에겐 '인격형성기(formative years)'"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55세가 넘는 투자자들은 채권 투자 손실에 대처할 경험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WSJ는 "채권시장이 마침내 꺾인다면 이들이 바로 패닉에 휩싸인 젊은 투자자들로부터 채권을 사게 될 사람들"이라면서 "나이 든 투자자들은 머지않아 일생일대의 채권 급매처분(firesale)에서 이익을 볼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j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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