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황병극 기자 = 연초 우리나라의 각종 경제지표가 둔화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다소 둔화되고 있으나, 물가안정에 대한 정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금융시장에서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선거철을 앞두고 중산층의 생활고와 직결되는 물가여건이 여전히 불안한 데다 국제유가 상승 우려 등 대외적인 경제여건이 불확실한 탓에 성장보다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의 강공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성장보다 물가안정에 경제정책을 '올인'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앞으로 금융통화위원회도 금리인하 카드를 꺼내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정부 내에서도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이나 인하 카드가 쉽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크다. 물가여건을 고려하면 금리를 내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경기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다.

▲정부 잇따라 물가안정 '올인'= 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대비 상승률 기준으로 지난 1년 만에 가장 낮은 3.4%로 둔화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통화당국의 물가 우려는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첫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올해 물가 여건을 낙관할 수 없다"고 진단하고 모든 부처가 물가대책을 최우선에 두고 업무를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박 장관은 정부 부처뿐 아니라 공공기관들이 재정사업을 시행할 때도 물가안정을 최상위에 둘 것을 주문한 데 이어 최근엔 물가 불안요인인 공공요금을 잡고자 공공요금 안정에 일조한 지방자치단체에 재정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까지 국회회의에서 직접 나서 "올해는 성장이 다소 낮아지더라도 물가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지난 9일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국제유가가 올라갈 위험이 있는데다 국내에서 공공요금이 인상될 수 있어 물가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아직 상당히 높다"고 밝혔다.

▲물가 안심하기 어렵다..각종 선거도 한몫=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소 낮아졌으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최근 이란제재 영향 등으로 국제유가 추이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정부 한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높은 데다 물가를 둘러싼 불안요인이 적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경제지표가 둔화되고 마당에 금리 인상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간접적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선거라는 요인도 물가관리의 중요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물가상승으로 중산층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삼황에서 다수 가계의 박탈감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물가관리의 필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해외투자은행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2월 금통위 직후 모건스탠리는 "한국의 물가는 아직 안심해선 안 된다"며 "기대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데다 국제유가가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도 "한국의 고물가 행진이 끝났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지금도 통화정책기조가 완화적인 데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지속되고 있다"며 "한은이나 정부도 이런 평가를 공유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당분간 금리인하 여력 제한= 결과적으로 당분간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물가안정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한영 중앙대학교 교수는 13일 하나금융포커스에서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확장적 통화정책과 이로 말미암은 물가상승이 양극화 심화의 원인이 됐다"며 "낮은 조세부담률과 고소득층일수록 부채가 많은 구조적인 특징으로 물가상승의 소득분배 개선경로도 거의 작용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물가안정을 통해 가계의 박탈감을 완화하지 못하면 또 다른 경제적 왜곡현상을 수반할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정책은 물론 재정정책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물가관리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은행권의 한 채권딜러는 "연초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가 연내 기준금리 동결로 서서히 옮아가고 있다"며 "정부가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물가가 한은의 물가목표치 중심축인 3%를 넘어서는 만큼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지 않은 이상 금통위도 금리를 인하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추정했다.

eco@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eco28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