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설립 4년여만에 사라지게 됐다. 금융기관의 자금중개기능을 활용하여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하고, 지역개발, 사회기반시설의 확충, 신성장동력산업 육성,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자금을 공급과 관리하는 국가적 임무는 이제 과거와 같이 산업은행이 대신하게 됐다.

산업은행의 민영화 작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책은행이던 산은을 세계적인 투자은행(IB)로 키운다는 명분으로 시작됐다. 2009년 산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14년까지 민영화를 추진하는 계획이 세워졌고, 이에 정책금융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정책금융공사가 출범했던 것이 개론적인 스토리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책금융 역할이 강조되고, 자연스레 산은 민영화가 무산되자 정책금융공사의 필요성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안팎으로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에서부터 매몰비용은 어찌할 것이며 정치권의 금융산업 흔들기가 아니냐는 비난까지 곳곳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애초 산업은행 민영화 작업은 글로벌 수준의 상업투자은행(IB)을 만들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강한 의지로 출발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IB산업이 퇴조하고 새 정부의 경제살리기에 부응할 정책금융의 역할이 다시 강화된 것이다.

교과서적이지만 정책금융의 부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정책금융이라는 것 자체가 시장경제 체제에서 자원이 골고루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상황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실패가 일어난 산업의 경우 일반 금융회사들이 대출 등 자금지원을 기피하기 때문에 이에 정부가 금리 인하나 보조금 지급 등 방법으로 지원하게 돼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금융산업이 발전하는 데엔 장애요소가 된다. 또, 기업자생력을 약화시키고 무역 마찰의 빌미를 야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책금융은 경제회복을 위해 현 시점에서 강조돼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로벌 IB 경쟁력에 대한 부분이 훼손되어서도 안 된다.

금융산업은 전체 산업의 지원을 위해선 반드시 역할을 다 해줘야 한다는 데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국내 시중은행들이 합병하고 덩치를 키워도 여전히 수익의 상당 부분은 서민들의 주택담보대출 이자 수익 등 예대 마진에서 나온다. 한심한 일이다.

해외로 나가서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산업은행이고, 앞으로도 산은의 경쟁력은 정책금융 기능에 묻혀선 안 된다는 데에 시장의 의견은 일치한다.

정부가 산은의 경영권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정부가 산은의 지분은 50% 이상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이미 싱가포르의 DBS가 그 모델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정책금융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수행하는 산업은행의 새 위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관치금융의 폐해 측면이다. 들쭉날쭉한 중장기 방향 설정과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산업은행의 정체성이 경계할 부분이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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