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통화스와프는 국가 간 계약이다. 더 정확히는 중앙은행 간 계약이다. 그런데 언로(言路)는 정부 편향적이다. 계약 주체인 한국은행은 입을 꽉 닫고 있는데 정부발(發)로 기사가 쏟아진다. 번번이 '양치기 소년'이 된 한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병만 앓고 있다. 주도권을 빼앗긴 한은 출입기자들도 입이 '댓 발' 나왔다.

연합인포맥스는 21일 오전 외환당국 고위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우리나라가 호주와 통화스와프를 추진하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한은과 기획재정부는 즉각적으로 해명자료를 냈다. 호주와 통화스와프 추진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다고 했다.

3시간 후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해명 내용을 뒤집었다. 현 부총리는 전북 군산 OCI 기공식 등 현장을 방문하면서 기자들을 만나 "호주와 통화스와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는 자원 부국이자 기축통화국이라는 강점이 있다는 구체적인 설명도 달았다.

모양새가 안 좋게 됐다. 통화스와프 계약 전선에 있는 실무진이 부인한 것을, 그 수장 가운데 한명이 곧바로 번복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실무진은 '멘탈붕괴' 상태다.

한은 입장에선 더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다. 최근 통화스와프 체결의 주역이 한은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계약 당사자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김중수 총재의 지휘 하에 한은은 신흥국 중앙은행들과 잇따라 양해각서(MOU)를 맺으면서 통화스와프 계약 등 협력 방안에 대해 수년간 공을 들여왔다. 물론 최종 의사결정은 정부와 공동의 몫이지만, 한은이 최전선에서 뛰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결과물이 속속 나오는 와중에도 김중수 총재는 말을 아낀다. 통화스와프에 대해 언급을 하더라도 원론적인 의미 설명에 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현오석 부총리는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지난 12일 현 부총리는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한국과 통화스와프를 논의 중인 나라가 몇몇 개 더 있다"고 말해 취재 열기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총재가 그러하니 한은 실무진의 입이 무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은 측은 현오석 부총리나 정부 측에서 뭐라 하든 크게 반발하는 움직임도 없다. 2008년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 때의 양측의 불꽃 튀는 신경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되레 정부와 마찰이 있는 것으로 비칠까 봐 걱정을 하는 눈치다. 한은이 알아서 꼬리를 내리니 충돌할 일이 별로 없다.

한은 내부에선 일부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작 고생을 하는 건 한은 직원들인데 정부와 비교해 노력의 결과물이 너무 묻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언제부터 정부와 협조 운운하며 제 목소리 한번 못 내는 중앙은행이 됐느냐는 자성도 나온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거대담론까지는 아니더라도 할 말은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푸념들이다. (정책금융부 채권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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