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위기설이 불거진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장이라는 평가가 많다.

인도나 인도네시아와는 달리 경상수지 흑자가 큰 폭으로 유지되고 있는데다 금융위기 이후 도입한 선물환 포지션 한도 규제·외환건전성 부담금·외국인채권투자 비과세 폐지 등의 거시 안전성 조치로 외국 자본 유출입에 따른 부작용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경제지표도 아직까진 나쁘지 않다. 지난 3분기 국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3% 증가, 7분기만에 최대폭을 기록해 성장에 대한 우려를 잠재웠다.

이로 인해 일부 전문가들은 이머징 시장에서 자금이 유출돼도 한국이 오히려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경제기반이 취약한 아시아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상대적으로 탄탄한 한국으로 몰릴 것이란 얘기이다.

실제 외국인들은 지난 8월13일부터 40일동안 13조원 넘게 한국 주식을 사들이며 '바이코리아' 행진을 이어갔고, 이 여파로 달러-원 환율은 1,060원선을 하향돌파해 연저점을 경신했다. 미국 경제회복 기대감에 달러가 강세를 띨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원화는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홍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소장은 "이미 지난 5~6월 국내 금융시장이 미국 테이퍼링 이슈로 한차례 변동성을 겪은 적이 있다"며 "미국 연준이 막상 자산매입을 축소한다고 해도 학습효과로 인해 과민반응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연준이 자산매입을 많이 줄이거나 매입을 중단할 경우 외국인 차익실현과 원화 약세 흐름이 나타날 수는 있겠으나 현상은 일시적이고, 그 강도도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발 금융 불확실성이 오히려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임병철 신한FSB연구소 소장은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질수록 시장 상황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직접 투자에 어려움을 느끼는 개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많아진다"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문가들에게 투자를 맡기는 간접투자, 즉 자산관리 사업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로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국내 시장도 일정부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게되면 국내 금융권의 외화조달 비용이 올라갈 것이라는게 그 첫 번째 우려다.

금융지주사의 고위 관계자는 "미국 테이퍼링으로 채권금리가 올라가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면 국내 금융회사의 외화조달이나 외화채권 차환 여건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며 "올 연말과 내년 초 국내 금융회사와 당국이 가장 촉각을 기울여야 할 변수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미 미리 외화자금을 끌어다 놓으려는 은행들도 있다. 얼마전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3억달러와 5억달러 규모의 외화채를 발행했다. 농협은행은 "양적완화 축소로 금리가 상승할 우려가 있어 내년 만기도래분의 일부를 미리 발행해두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금리상승에 따른 기업·가계 채무불이행 가능성으로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차입금 의존도가 높고 현금창출 능력이 낮은 기업의 경우 자금조달 여건 악화, 이자부담 증대 등으로 채무불이행 위험이 상승할 것"이라며 "이 경우 은행 기업대출 건전성도 함께 악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채권과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면 직접 금융을 통한 기업 자금조달이 위축되면서 은행에 대한 대출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며 "자금 수요가 은행으로 집중되면 우량 대기업에 대한 대출을 우선적으로 취급하고, 비우량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은 기피하는 신용차별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통화정책의 변화가 간접적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신용경색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다.

한은은 "예상치 못한 충격 발생에 대비해 국내 은행이 자본확충 등으로 충격흡수 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고, 은행이 중소기업이나 가계에 대해 부당하게 가산금리를 인상하거나 과도하게 대출을 회수하는 행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병철 소장은 "금리가 상승하면 기업의 대출 상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자금조달에 경쟁력이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의 격차가 앞으로 더욱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금리상승이 보유 채권값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 뿐만 아니라 자금 운용 측면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한 시점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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