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글로벌 환율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지연되면서 달러가치가 떨어지고 있어서다. 달러하락의 반작용으로 유로화가 급등하자 유럽 정책당국은 금리인하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유로화 떨어뜨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10월말에 나온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는 의미심장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이 유럽의 맹주 독일의 환율정책에 대해 강력한 일침을 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일이 수출로 번 돈을 쌓아놓기만 해 유로존과 세계경제에 폐를 끼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독일에 경상흑자 축소를 축소할 방안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환율 측면에서 보면 유로화 가치를 올리라는 우회적인 요구인 셈이다.

이에 대해 독일은 "미국의 비판을 이해할 수 없다"며 미국 재무부의 지적 때문에 경제정책을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 도청 문제를 놓고 미묘한 국면에 있는 미국과 독일이 환율 정책을 놓고서도 충돌하는 모양새가 됐다. 유럽 언론에서는 셧다운(연방정부 업무 정지)과 디폴트(국가부도) 우려로 세계 경제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미국이 오히려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예외적인 경우에만 환율에 개입하고, 개임한 즉시 이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아베노믹스를 주시하겠다며 '통화정책은 국내적 목표에만 집중해야한다'는 G7 성명의 약속을 지킬 것을 주문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의 환율보고서 파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불거진 환율전쟁의 전운은 미국-유럽 정책당국의 신경전과 유로-달러 환율 동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출구전략 지연으로 유로화가 오르다보니 수출 경기 둔화를 걱정하는 유럽정책담당자들은 유동성 공급 확대와 금리인하 등 완화조치 가능성을 시장에 흘리기 시작했다. 에발트 노보트니 ECB 정책위원은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이 만료되면 추가 유동성 공급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LTRO 만료를 앞두고 '절벽 효과(정책 종료시 나타날 시장 혼란)'가 나타날 것을 염려해서다.

10월 초 1.35달러 수준에서 머물렀던 유로-달러는 17일 연준의 통화정책 발표 후 1.38달러까지 급등했다가 유럽 정책당국의 강력한 완화정책 시사(31일) 이후 1.35달러선으로 내려왔다. 미국이 출구전략 지연으로 '장군'을 불렀더니 유럽이 유동성 공급 카드를 꺼내 '멍군'으로 방어한 모양새다.







<그림설명:연준 통화정책을 전후로 한 유로-달러의 일간 그래프>



통화정책을 무기로 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의 점진적 축소)이 내년 3월로 연기된 만큼 각국 환율의 등락에 따라 중앙은행들 간의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질 전망이다.

오는 7일 예정된 ECB 통화정책 회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와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연장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5일 열릴 호주의 통화정책 회의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호주는 내년 초 금리인하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지난 주 회의에서 현행 양적완화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BOJ는 아베노믹스가 자리잡을 때까지 출구전략보다 경기활성화에 역점을 둔 통화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의 출구전략 지연은 국제금융시장과 글로벌 중앙은행에 중요한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꾸준히 출구를 모색했던 연준은 셧다운과 디폴트 우려라는 두가지 장애물을 만나 '일단 멈춤' 모드로 들어갔고, 출구전략 1순위로 여겨졌던 미국이 주춤거리자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몸을 움츠리는 형국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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