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울 시내에서 막걸리와 파전, 돼지 간과 수육 한 접시 값이 가장 저렴한 지역이 어디일까. 서울 한복판 탑골공원과 종묘가 있는 종로 3가 뒷골목 일대다. 이곳은 2천5백 원이면 돼지국밥 한 그릇을 사먹을 수 있다. 인심 좋은 주인을 만나면 무한 '리필'도 가능하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그야말로 주머니가 가벼운 가난한 노인들의 천국이다.

수도의 심장인 소위 '블링 블링'한 거리 모습을 가진 광화문과 종각에서 5분만 걸어 탑골공원 쪽으로 가면 거리의 모습은 보도블록의 색깔부터 어두워진다. 건물과 골목의 벽은 얼룩이 묻은 회색빛이다. 보행자 중에 젊은 연령층은 찾아보기 어렵고 행인 대부분은 60-70대 고령자들이 단조로운 점퍼 차림에 무표정한 모습이다. 대로변 주위는 물론이고 골목의 가게나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더 칙칙하고 지저분해진다. 공원 주변의 노인센터에는 벌써 몇 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일찍부터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고령자들이 줄을 늘어서 항상 장사진이다. 주변의 거리 벤치와 뒷골목에는 거동이 느린 수많은 남성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거나 잡담하고, 홀로 신문을 보거나 멍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

집과 회사 사무실이 가까워 이 지역을 20여 년간 걸어 다니면서 노인들과 거리 풍경 변화를 살피는 게 습관이 됐다. 최근 들어 이곳은 경기침체와 고령화의 빠른 진전으로 점점 더 을씨년스러워지는 느낌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속도로 고령화되는 국가다. 일본이 35년 걸렸던 고령사회가 한국은 26년 만에 화끈하게 달성할 전망이다.

1960년대 한해에 100만 명씩 태어나던 아기들이 90년대 들어 연 50만 명으로 줄더니, 이제는 한해에 30만 명도 태어나질 않는다. 아기 울음소리가 멈춘 나라, 대신 베이비붐 세대들은 무섭게 늙어가는 나라,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2013년에 이미 생산 가능 인구는 정점을 쳤다. 아직은 노동임금 단가가 가장 낮은 상태이지만 앞으로 젊은 인구가 줄어들어 노임 단가의 상승세가 불가피해진다. 생산 인구의 비중은 2030년에는 더욱 악화해 60% 정도로 줄고, 2060년이 되면 50%로 줄어든다. 대신 이때 노인인구 비중은 40%로 늘어나고 미래의 꿈나무인 유소년 인구는 10%대로 뚝 떨어진다. 인구구조가 정삼각형에서 역삼각형으로 대전환 되는 극적인 시간이 진행되고 있다.

그때쯤이면 종로 3가뿐만 아니라 서울의 모든 거리는 두 명 중의 한 명이 60세 이상의 노인들로 채워질 것이다. 길거리만 회색빛이 되는 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는 지금과는 모습이 뿌리부터 달라진다.

노동인구의 감소는 기업의 신규 고용과 퇴직 등 생산관리에 큰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일할 젊은 사람이 없는데 성장이 담보될 리가 만무하니 실물경제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골병든다. 처음에는 감속 성장이 일상화되다가 차츰 마이너스 성장으로 곤두박질하게 된다. 고령화에 따른 연금시장의 변화로 금융 산업 재편은 말할 것도 없다. 사회보장 및 복지 정책도 대대적인 조정도 불가피하다. 연금 납입자는 적은데 수혜자만 늘어나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사회 안정성을 깨지게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30년간 '빙하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내년부터 이런 변화가 생활주변에서부터 서서히 느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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