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스털린 패러독스(Easterlin’s paradox)는 소득이 일정수준에 달하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추가적인 소득 증대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경제 이론이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1974년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보면 전형적인 이스털린 패러독스에 해당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1960년 1인당 GDP가 100달러에도 못미치는 최빈국에서 2012년 2만3천679달러(IMF 발표 기준 34위) 수준까지 경이로운 속도로 발전했다.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시절에는 GDP가 늘어날수록 국민의 행복도도 높아졌다. 1인당 GDP가 늘어날수록 밥 굶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고 내 차도 소유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권탄압이 심했던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 평가가 야박하지 않은 것도GDP 성장 덕분으로 볼 수 있다. GDP 성장 덕분에삶의 질이 빠른 속도로 개선된 추억을 가진 일부 국민들은 그 시절에대한 향수까지 가지고 있다.

역대 정권이GDP를 성장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GDP 성장이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던 시절이 지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최근늘고 있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스털린 패러독스가 1인당 GDP 1만달러 시절부터 이미 작용했다고 진단한다. GDP 성장이 더 이상 국민의 행복도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세계 34위의 부자나라가 됐지만 자살률이 OECD 국가 가운데 8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경우가 행복도가 증가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자수는 2009년 기준으로 28.4명으로 33개 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10~30대의 사망원인 1위도 자살이다.

해마다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대학 입시도 이스털린 패러독스가 작용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1.9%까지 올라갔다.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모두가 대학생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지만 국민행복도를 더 높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모든 입시생과 학부모들이 퍼즐같은 대학 입시 요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특히 상위 25% 소득 계층 자녀의 상위권 21개 대학 진학률이 21.1%인 반면 하위 25% 계층의 자녀는 2.7% 그친다는 통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케인즈(J. M. Keynes)는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of Our Grandchildren)’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손자 세대가 살아갈 100년 후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일주일에 15시간씩 일하면서 여가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케인즈는 이 글에서"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즐기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도록 훈련 받았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이제 국민의 행복도를 높이는 정책 조합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 됐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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