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국내 기업들이 유럽에서도 가장 값싼 매물이 많은 이탈리아에서 인수·합병(M&A)을 시도하고 있으나 쉽사리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올해 2분기까지 8분기 연속 역성장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부실화됐고 이들은 새로운 투자자나 주인을 찾고 있다. 따라서 인수 적기라는 시각도 많다.

국내 기업들도 유럽 진출의 교두보 또는 사업 확대의 기회로 보고 직접 또는 자문사를 통해 인수를 검토해왔다. 하지만, 아직 성공보다 무산 사례가 더 많은 실정이다.

인수가 무산된 이유는 제각각이다. 현지 반대여론에 밀리기도 하고 국내 기업 자체 사정으로 포기한 사례도 있다.

12일 M&A 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034020]과 효성[004800]이 최근 이탈리아 현지 기업 인수에 실패하거나 포기한 데 이어 제일모직도 자체 사정으로 인수전에 불참했다.

지난 2011년 이탈리아의 명품 피혁 브랜드 '콜롬보 비아 델리 스피가(COLOMBO Via Della Spiga)를 인수한 제일모직은 최근까지 이탈리아의 또 다른 패션업체 인수전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제일모직이 패션사업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내달 1일자로 넘기기로 함에 따라 인수를 포기했다. 에버랜드 경영진이 이를 검토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유수의 글로벌 패션기업들이 참여한 경쟁 입찰이어서 패션사업부 양수도 이후로 협상을 미룰 수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 두산중공업은 이탈리아 방산업체 핀메카니카(Finmeccanica)의 에너지·발전사업 자회사인 안살도에네르기아(Ansaldo Energia. 이하 안살도) 인수에 실패했다. 안살도는 재무적 투자자(FI)인 이탈리아 국영은행에 팔리게 됐다.

안살도의 모회사인 핀메카니카는 이탈리아의 국민기업을 통해 인수 초기부터 해외 매각을 반대하는 현지 여론이 비등했다. 두산중공업이 추후 재매각 시 우선협상권을 가졌으나 인수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8일에는 이탈리아 타이어제조업체인 피렐리(Pirelli)의 타이어보강재 사업부문 인수를 검토해왔던 효성이 입찰에 불참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세계 1위이자 유일한 종합 타이어보강재 제조사인 효성 측은 피렐리 인수를 검토한 결과 시너지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순수하게 사업상 검토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세무조사와 검찰의 압수수색, 조석래 회장의 입원 등 그룹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삼성중공업이 이탈리아의 해양 플랜트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들여다봤으나 인수로 이어지지 못하는 등 국내 기업의 이탈리아 기업 사냥이 검토에 비해 성사 건수가 적다.

반면, 이탈리아에서 짭짤한 인수 성과를 거둔 곳도 있다.

2010년에 라리오와 벨페를, 2011년에는 만다리나덕을, 2012년에는 코치넬리를 각각 인수한 이랜드그룹는 최근에도 해외 사모투자펀드(PEF)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브루노말리 인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랜드가 패션 강국인 이탈리아 브랜드를 인수하며 글로벌 성장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패션 뿐만 아니고 식음료, 제약, 기계 부문 등에서 여러 기업의 인수 검토는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는 조언도 잇따른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경제가 조금씩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어 타이밍을 놓치면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

M&A 업계 관계자는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기업 매수 적기는 내년 상반기까지로 보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너무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탈리아 기업 인수는 유럽 진출의 교두보일 수도 있고 사업 확장의 기회일 수도 있는데 여러 사정으로 계속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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