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재계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신음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각종 규제와 세무조사 등이 급격히 늘어난데다, 실적 부진과 총수들의 개인비리도 발목을 잡고 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총 다섯 차례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 참석자가 10명이 넘은 적은 한차례도 없었다.

전경련 회장단 정원이 21명인 것을 고려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지난 9월에 이어 11월에 열린 회의에서는 참석자 수가 7명에 불과했다.

재계의 대표 협의체인 전경련이 이렇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최근 재계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무조사·규제강화·인사 외풍(外風)…'재계 비상' = 실제로 재계에는 올 초부터 내·외부의 악재가 잇달아 겹쳤다.

우선 새 정부는 지난 2월 출범 직후부터 복지 재원 마련과 경제민주화 실현 등을 위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롯데와 LG, SK, 한화, CJ, 포스코, 현대자동차, 대우건설 등이 국세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국세청뿐만 아니라 모든 사정·세정 당국이 기업에 대한 조사도 늘어나고 있다.

관세청도 기업에 대한 관세 부과 조건을 엄격히 적용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GS칼텍스와 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3사에 관세 포탈 혐의로 5천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내년에 기업에 징수하는 벌금·과징금 규모를 올해보다 15% 이상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 이전 정권은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워 출범했지만, 새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공약하면서 정권 출범 후 기업규제 법안도 강화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이 화학물질 관리 미흡으로 사고를 내면 사업장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으로 물리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 마련돼 오는 2015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서도 총수 일가에 대해 증여세를 매기는 세법이 올해부터 시행됐고,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임금제도개선위원회에서는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에 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정부는 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통상임금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연내 입법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들어서는 동양과 효성이 부실 계열사 지원에 금융 계열사를 동원한 것으로 드러나자 정부는 대기업에 대한 금산분리 규제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정치권에서는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순환출자 금지법안'과 근로시간을 강제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환경관련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축소하는 내용의 개정안 등을 논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정부가 민영화된 KT와 포스코의 CEO 인사에 영향을 미친 정황이 포착되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들어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와 공정위 과징금 부과가 급중하고 있고, 각종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최근 재계 분위기는 한마디로 '죽을 맛'이다"라고 토로했다.



◇수감되는 총수들…재계 "투자 분위기 만들어 달라" = 재계 내부에서도 악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재계 총수들이 대거 개인비리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게 됐다.

재계 3위인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형제가 나란히 횡령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이재현 CJ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도 배임 혐의로 구속된데다 건강마저 크게 악화된 상황이다.

최근에는 효성의 조석래 회장 역시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라 세계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몇몇 대기업은 실적 부진에 쓰러지고 있다.

적극적인 M&A(인수합병) 전략으로 승승장구하던 STX그룹은 경영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결국 강덕수 회장은 STX조선해양 대표이사직을 내놓게 됐다.

동양그룹 역시 그룹이 자금난에 심해지면서 주력 계열사들이 잇달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현재현 회장은 경영실패의 책임을 떠안게 됐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들은 오너에 대한 경영 의존도가 높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오너의 과감한 투자결단이 특히 필요하다"며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오너에 대한 수사와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서 많은 기업이 경영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되자 그동안 숨죽여 있던 재계도 최근 들어 서서히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결집력은 떨어져 있다.

실제로 전경련 회장단은 지난 9월 열린 회의에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아시아 신흥국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의 불안감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업규제 법안은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지난달에는 30대 그룹 사장단이 정부와 가진 투자·고용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은 빨리 마무리하고 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 경제 활력 회복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또, 15일에는 경제5단체장들이 여야 원내대표들을 만나 "경제활성화를 위한 법률작업은 속도를 높이고, 기업에 부담되는 법률안의 처리는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기업을 상대로 투자와 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주문하면서도 그럴 수 있는 분위기는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며 "최근 들어 투자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다 같은 목소리를 내도 먹힐지 의문인데 결집력이 떨어져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yuja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