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재헌 기자 = 신념은 운수를 이긴다고 했다. 자본시장에서 비전문가들이 전문가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었다고 하면, 이는 운(運)으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을 일부 책임지는 사람들이 대가 없이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면, 이는 신념이 작용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의 공시자료를 보면 지난 10월 말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의 단기자금 수익률은 2.93%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목표치보다 16bp(1bp=0.01%포인트), 민간금융사로 구성된 연기금투자풀보다 39bp나 높다. 건보공단은 순환보직이기 때문에 자금운용을 비전문가 대부분이 한다. 이들을 이끌며 건보공단의 자금을 책임지는 조준기 재정관리실장(사진)을 29일 만났다.





▲스터디에 세미나…사명감이 우선 = "조직원의 발전이 없는 조직은 미래가 없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튼튼해야 국민도 건강해집니다."

조준기 실장이 근무하는 재정관리실에는 건보공단 내에 없는 특수 공간이 있다. 비좁은 사무실을 쪼개어 만든 '지식나눔방'이다. 지난해 2월, 조 실장이 부임하고 이곳을 만들었다. 여기서 조 실장과 재정관리실원들은 토론회와 외부 금융전문가 초청 세미나, 자체 스터디를 끊임없이 진행한다. 이를 정착한 지 1년이 안 돼 재정관리실에는 '투자자산운용사'와 같은 자격증 취득자도 나왔다. 재정관리실원들이 진짜 자본시장 전문가 집단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사실 건보공단 직원들이 많은 공을 들여 수익률을 높일 유인은 많지 않아 보인다. 초과수익률을 달성해봐야 인센티브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 분야에서만 일하도록 공단 측이 배려해주는 것도 없다. 민간금융사보다 보수도 높지 않다. 건보공단은 인사적체도 심한 편이라 초고속 승진도 어렵다. 그야말로 국가재정 윤택하게 한다는 신념이 아니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조 실장은 "건보공단의 재정이 적자가 나면 국민도 불안해하고 국가 재정에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며 "재정은 조직의 혈관과도 같은데 이를 통해 영양분과 산소가 잘 공급되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최적과 기관 평가 철저 = 이러한 신념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정관리실은 최상의 포트폴리오를 짠다. 45조원 규모인 전체 자금의 80%가량을 머니마켓펀드(MMF)와 정기예금, 금융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특정금전신탁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에 나눈다.

건보공단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병원을 오가며 보험급여비를 신청하기 때문에 운용기간(듀레이션)이 평균 18일에 불과하다. 운용자금의 금리 변동성과 듀레이션이 비례하는 특성상 단기자금 운용은 초과수익을 내기 녹록지 않다. 단기자금으로 운용할 수 있는 상품군의 금리가 다 비슷하다는 뜻이다. 국민의 자금을 안전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철칙 때문에 수익률이 높은 고수익 상품 투자도 제한돼 있다.

이러한 악조건을 타개하기 위해 조 실장은 위탁운용사에 대한 깐깐한 심사를 시작했다. 142개의 MMF 펀드 중 옥석을 골랐고, 공단의 3개 주관운용사에게도 전월실적에 따라 차등하게 자금을 집행한다. 이는 운용사 간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수익률을 제고하는 등 우수한 실적에는 숨은 노력이 따로 있었다.

그는 "최근 복지와 건강보험 보장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건강보험제도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요재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고 설명했다.

▲실천적 건강복지 플랜 차질 없어야 = 그와 재정관리실의 장기목표는 건보공단의 실천적 건강복지 플랜이 차질없이 나아가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 외 그는 행복을 위한 화합을 강조했다.

조 실장은 "행복한 직장 분위기는 단지 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 직원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신뢰하고 화합할 수 있을 때 조직과 제도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전했다. 건보공단 재정관리실은 총 36명으로 조 실장 외 조해곤 부장과 문광자 부장이 자금운용과 재정관리를 각각 담당하고 있다.

jhlee2@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