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삼성그룹이 올 연말 인사에서 6년 만에 부회장 승진자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부회장단 규모가 축소됐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근무연한 등에서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 설명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 부회장단, 실질적으로 3명으로 축소…'승진대상'은 많은데 = 지난 2일 발표된 삼성그룹 사장단인사에서 부회장 승진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연말인사 때마다 매년 2명씩 부회장 승진자가 배출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이 삼성물산 고문직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삼성 부회장단은 기존 6명에서 5명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남아있는 부회장 중에서도 강호문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과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은 경영일선에 나서는 보직이 아니다.

따라서 삼성그룹의 경영을 이끄는 부회장단은 실질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 3명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부회장단 규모가 축소된 데 대해 삼성 측은 아직 부회장으로 승진할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관계자는 "지금까지 부회장들은 보통 사장 생활을 7~8년 정도 하고 승진했다"며 "그러나 현재 부회장 후보로 꼽히는 사장들은 아직 이보다는 경력이 짧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 연말에 부회장에 승진할 수 있는 후보는 찾아보면 많았다.

우선 승진 연한과 상관이 없는 오너 일가 중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있었다.

이 사장은 지난 2010년 승진한 후 3년 동안 사장에 머물러 있었지만, 오빠인 이재용 부회장은 사장을 단 지 2년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따라서 이 사장 역시 올 연말에 승진한다고 해도 시기상으로는 문제 될 게 없었다.

삼성전자에서도 신종균 IM(IT&모바일) 대표와 윤부근 소비자가전(CE) 대표가 유력한 부회장 후보로 꼽혔다.

둘 다 사장을 단 지 5년째지만, 신 사장은 현재 삼성을 먹여 살리는 스마트폰 사업을 키운 장본인이고 윤 사장은 삼성 TV가 8년 연속 세계 1위를 하게 한 공신이다.

평소 '신상필벌'의 인사원칙을 강조하는 삼성이기 때문에, 승진연한이 다소 모자라더라도 이들을 승진시키려면 충분히 시킬 수 있는 공적이 있었던 것이다.

◇ 이재용 부회장 '힘 실어주기' 해석도 =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부회장 규모를 줄인 데에는 다른 뜻이 있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즉, 한마디로 부회장 자리의 '희소성'을 높이고자 승진자를 최소화하고, 기존 부회장단 규모도 줄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이는 결국 작년 말에 부회장단에 합류한 이재용 부회장에 힘을 실어주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경영일선에 나서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전무에 오른 후 2년 만인 2009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이듬해에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 후 2년 만인 작년 말에는 또다시 부회장에 올랐다.

특히 작년 말 승진하고 나서는 최고운영책임자(COO) 직함을 떼고 특별한 공식 직함 없이 '경영조율'과 '신사업 추진' 등 역할에 더욱 집중했다. 올해 들어서는 삼성을 대표해 해외 유명 인사를 직접 만나는 등 공식활동도 부쩍 늘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삼성그룹 부회장단의 주된 역할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활동을 보좌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이 부회장이 최근 이건희 회장의 경영활동을 예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보좌하는 만큼, 부회장단의 기존 역할은 다소 축소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부회장단 규모를 축소해 '부회장'이라는 직책의 희소성을 높이는 것은 그룹 후계자인 이 부회장에 힘을 실어주는 방안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도 선대 회장이 살아계실 동안에는 부회장 자리에서 줄곧 후계 수업을 받았다"며 "그만큼 삼성의 '부회장' 타이틀은 그룹의 2인자라는 상징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 이재용 부회장도 한동안 부회장 자리에서 이 회장 보좌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에 따라 부회장단을 축소하고 사장단 평균 연령도 낮춰 이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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