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명주식을 둘러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유산소송 항소심에서 양측은 '핵심 쟁점'을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재판부는 다음 달에 2심 판결을 내놓기로 했다.

3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 서관 412호에서 민사14부(부장판사 윤준) 심리로 열린 4차 공판에서 양측은 지난 기일에 재판부가 주문했던 '핵심 쟁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변론했다.

지난달 열린 3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와 차명주식의 상속 간의 연관성'과 '차명재산 인지시점'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양측에 주문한 바 있다.

원고 측은 경영권과 차명주식은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피고가 차명주식을 단독 승계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고 대리인은 선대 회장 타개 당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오너 일가가 핵심기업을 지배하고, 그 기업이 나머지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원고 변호인은 당시 지배구조 '핵심기업'으로 제일제당과 신세계백화점, 제일모직, 제일합섬, 삼성문화재단 등을 꼽으며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생명과 전자는 지배구조상에서 중요한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들 기업의 차명주식을 전부 가져야 한다는 원고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공격했다.

원고 대리인은 지난 1965년에 선대 회장이 사재로 가지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 전량을 삼성문화재단 설립에 출연했다는 당시 기사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삼성생명에 대한 선대회장의 실명 지분이 없었기 때문에 후계자인 이건희는 경영 승계를 위해 차명주식이 필요했다는 원고의 주장은 완전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선대회장의 유지대로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차명지분의 단독 승계도 필수적이었다고 맞섰다.

피고 변호인은 "선대회장은 피고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겠다는 뜻을 자서전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수차례 밝혔다"며 "특히 '나눠먹기식 상속은 안 한다'는 말을 통해 피고가 경영권을 단독 승계할 수 있도록 재산 대부분을 물려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또, 선대회장 타개 당시 지분율을 고려할 때 피고가 차명주식의 단독 승계 없이는 경영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피고 측은 당시 삼성생명 차명주식을 법적 상속분으로 나눴으면 이건희 회장 측의 지분율은 42%, 다른 상속인의 지분율은 58%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피고와 다른 상속인의 지분율이 각각 11.20%(삼성생명 지분 포함), 11.07%였기 때문에 차명주식을 법적으로 나누면 이 회장 측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을 가질 수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피고 대리인은 "현재와 다른 과거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세우는 원고 측의 주장은 듣기에 상당히 거북하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상대 변호인의 주장을 거짓말이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남의 일을 하시는 분들이 감정적으로 재판에 임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중재했다.

차명주식의 존재를 인식한 시점에 대해서는 피고 측이 "경영일선에 깊숙이 관여했던 원고가 당시 재계의 관행이었던 것을 몰랐을 리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또, 지난 1989년 당시 형제들이 합의한 '상속분할협의서'에 주요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실명 유산주식이 표시되지 않았는데, 이는 선대회장이 해당 기업은 차명으로 지배했다는 점을 모든 상속인이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피고 측은 상속 문제는 이미 20여 년 전에 끝난 일인 만큼 제척기간(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났다고 강조했다.

반면, 원고 측은 "원고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차명 주식의 존재에 대해 언제 확실하게 알게 됐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선대회장 때부터 차명주식은 몇몇 비선 라인에 의해 철저한 보안 속에 관리됐기 때문에 1969년부터 경영일선에서 배제된 원고가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지난 2008년 삼성특검 발표 당시에도 피고의 차명재산이 언급됐지만, 해외에서 체류 중인 피고가 상속회복권을 청구할 만큼 확실히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원고 대리인은 "결국 지난 2011년 6월경 피고 측이 공문을 통해 차명유산의 존재를 밝히고 나서야 상속권이 침해됐음을 인지했다"며 "따라서 상속권 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기한은 지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판부는 남은 한 달 동안 심리를 빠르게 진행해 다음 달 14일에는 판결을 내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음 공판은 이번 달 24일 오후 2시에 열리고, 상황에 따라 결심 기일 전인 다음 달 7일에 재판이 한 번 더 열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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