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거품은 양면성이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필요악이기도 하지만 위기를 불러오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거품을 주기적으로 만들어낸 금융 자본주의는 20세기 이후 지구촌 경제의 성장 토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금융자본주의는 거품으로 인해 수많은 위기를 겪기도 했다. 탐욕과 투기가 만나 수시로 거품이 터쳤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2008년의 주택거품과 2000년의 IT(정보기술) 거품이 있었고, 멀게는 17세기 튜울립 거품, 19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이 있었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 거품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다우지수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등 주요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뉴욕증시는 거품논란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주식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주택시장과 주요 자산시장에도 거품이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실러 교수는 뉴욕증시의 거품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했고 비관론자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아시아와 유럽 주택시장에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거품론의 공통분모는 저금리 체제다. 미국은 제로금리로도 모자라 세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로 돈을 풀었고 유럽중앙은행(ECB)도 기준금리를 0.5%까지 낮춰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유럽국가들이 제로금리에 가까운 저금리 체제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다.

문제는 저금리로 풀린 돈이 실물 경제로 퍼져나가지 않고 자산시장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려들고, 유럽에서는 부동산시장으로 유동성이 몰려든다는 게 거품을 경고하는 학자들의 견해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각국 정부에서 푼 돈이 밑바닥 서민경제로 퍼지지 않고 부자들의 배만 불리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러한 현상은 '1% vs 99%'의 경제구도를 고착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금 형성된 자산가격이 정당화되려면 실물경제의 회복이 동반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미국 경제의 각종 지표가 호전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고용지표를 보면 최근 두달간 각각 2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3분기 분기성장률은 3.6%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회복에 속도가 붙고 있다. 뉴욕증시가 실물경제에 앞서 오른다고 본다면 최근 형성되고 있는 거품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거품이 당장 터질 거품이 아니라 경제가 활성화되는 과정에 생기는 거품이라면 미국 정부도, 투자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거품이 생기더라도 실물경제가 회복되고 미국의 통화.재정정책이 정상화의 길을 밟는다면 아직까지 경고를 받을 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숙제는 '경제의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일정 부분의 거품은 용인할 자세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증시는 걱정의 벽을 타고 오른다는 격언이 있다. 최근 자산거품 논란에서 새겨들을 만한 격언이다. 거품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거품이 아니라는 증거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거품 논란이 지속될 때 자산가격은 오히려 상승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정작 거품이 터질 때는 "모두가 오른다"고 말할 때다. 지금의 거품은 있더라도 위험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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