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뉴욕 24시> 딜러들이 '볼커룰'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
<이진우의 뉴욕 24시> 딜러들이 '볼커룰'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
  • 이진우 기자
  • 승인 2013.12.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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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연합인포맥스) 월가 대형은행 딜러들의 프랍트레이딩(자기자본 거래)을 막는 '볼커룰`이 미국에서 사실상 시작됐다.

법은 오는 2015년 7월부터 발효되지만, 미국 금융당국이 지난 10일(미국 시간) 법을 승인했다는 것은 지금부터 은행의 준비 사안을 확인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월가 대형은행은 프랍 데스크(부서)를 없애거나 대폭 줄였다.

프랍 데스크는 `월가의 꽃'으로 불려왔다.

프랍 딜러는 시쳇말로 `돈 되는 것'을 다 거래한다.

예컨대 주식, 채권에서 외환, 파생상품까지 전 금융시장에 투자한다. 실물 상품 투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이라도 이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투자 자금은 고객 자금이 아닌 은행 자금이기 때문에 일단 수익을 올리면 고스란히 은행의 몫이 된다. 그 수익은 연말 프랍 딜러에게 엄청난 규모의 성과급으로 연결됐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프랍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워싱턴은 이를 '탐욕'이라 지칭했고,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초강력 규제를 주장했다.

그 결과 볼커룰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볼커룰은 프랍 거래를 막기위해 컴플라이언스(준법)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은행이 자기자본 거래를 할 때는 이것이 예외적인 사안이라는 것을 서류로 완벽하게 증빙해야 한다.

위장 프랍 거래를 막지 못하면 최고경영자(CEO)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프랍 딜러들의 보수까지 컴플라이언스가 통제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큰 틀에서 보면 은행감독의 시대, 은행 내부로 보면 준법부서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볼커룰 정문(official text)의 분량은 약 1천페이지인 것로 알려졌다. 그만큼 복잡하다는 얘기다. 은행은 은행마다 각기 다른 트레이딩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한 감독기구가 통합해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5대 감독기구가 제 각각의 분야에서 볼커룰을 적용하게 된다. 프랍거래가 결국 법의 사각지대를 찾아낼 것이란 외부의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정작 월가의 대다수 프랍 딜러들은 포기하는 분위기다. 컴플라이언스가 무서워 프랍 거래를 할 수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최근 만난 월가의 한 펀드매니저는 자신이 예전에 컴플라이언스 때문에 '멘붕'에 빠진 사연을 들려줬다.

어느 날 나이가 지긋한 한 고객이 자신을 찾아왔다. 큰돈을 맡기며 자신과 자신의 아들 이름으로 각각 자금을 운용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부자인 자기를 믿고 천방지축인 아들이 주식 계좌가 생긴 것을 알면 대번에 돈을 빼 흥청망청 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통사정에 펀드매니저는 아들의 동의 없이 아들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 자금을 운용했다.

은행 지점장은 수익률이 좋다며 펀드매니저를 칭찬했다. 둘은 평소 가까웠다고 한다. 하지만, 격없는 대화 속에 펀드매니저가 계좌의 진짜 주인을 말한 것이 화근이 됐다.

지점장은 정색하고, 즉각 준법 부서에 이를 보고했다. 펀드매니저는 지점장에게 수차례 해명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펀드매니저의 모든 고객에게 전화해 차명계좌는 없는지, 펀드매니저가 고객 동의 없이 거래를 한 적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문제가 발견되지 않자 지점장과 준법 부서는 펀드매니저의 컴퓨터를 압수했다.

펀드매니저의 모든 거래를 일시 정지시키고 준법 여부를 확인했다. 지점장은 평소에는 전혀 말하지 않았던, 펀드매니저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후 컴플라이언스 담당 최고 책임자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후 소명을 들어보겠다는 것이다. 펀드매니저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퇴사 조치를 당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준법 부서의 최고 책임자가 자기와 같은 아시아계여서 성인 아들의 동의 없이 아들 계좌를 만들어달라고 한 늙은 아버지 부탁을 들어준 것을 아시아 특유의 가부장적인 고객을 관리하는 차원으로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볼커룰이 적용됐다면 어땠을까. 이 법은 인정사정이 없다. 걸리면 잘린다. 온갖 규정이 나열돼 있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적용이 가능한 것이 두렵다.

내부 컴플라이언스 부서는 더 두렵다.

볼커룰은 연좌제와 비슷하게 공동 책임을 묻고 있다.

내가 살려면 남을 감시해야 한다. 언제 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될지 모른다. 딜러들이 볼커룰을 무서워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미주본부 뉴욕 특파원)

w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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