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현대그룹이 22일 내놓은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계획안의 핵심은 현대증권 등 금융 계열사 3사를 포기하기로 것이다.

현대증권과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 등 3개 계열사를 팔아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은 전체 유동성 확보 계획치인 3조3천억원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7천억원에서 1조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해운업황 침체로 유동성 어려움에 빠진 그룹 핵심 기업인 현대상선을 살리고, 채권단과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해 향후 원활한 금융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알짜' 사업도 포기하는 결단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그간 "현정은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면서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그룹의 한 축인 금융업까지 포기하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

특히 현대그룹이 약 6천억원 가량의 자금을 이미 확보했기 때문에 당장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고강도 자구계획안을 내놓을 것을 압박했다.

실제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1천200%를 넘어섰고, 손실이 누적돼 업황 회복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금융권 부채를 상환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만도 8천200억원에 달한다. 회사채는 신속인수제를 통해 차환을 한다 치더라도 CP 등의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선박금융 등의 차입금까지 감안하면 필요한 돈은 더 늘어난다.

일단 이날 현대그룹이 내놓은 자구계획안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강도가 높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현금보유도 충분한 상황이지만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선제적이고 자발적인 고강도 자구안을 마련했다"며 "그룹의 한 축인 금융계열사 매각 여부에 대해 고심을 거듭했으나 유동성 문제 해결과 시장의 신뢰회복을 위해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를 매각하기로 한데 대해 그간 그룹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과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 등 금융 계열사 매각을 산은 등 금융권과 협의해 진행할 예정인데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한 뒤 통매각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이 주도가 돼 진행중인 동부그룹의 자산매각과 동일한 방식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SPC를 설립해 금융 계열사 등의 자산을 이전시키고 세부적인 매각 방안과 절차는 주채권은행인 산은을 비롯한 금융권과 협의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룹의 한 축인 금융업을 포기한 현대그룹은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해 사업구조를 정리해 나갈 방침이다.

해운(현대상선), 물류(현대로지스틱스), 산업기계(현대엘리베이터), 대북사업(현대아산) 등 4대 사업을 새롭게 그룹의 축으로 조정한다.

7성급 호텔인 반얀트리호텔도 매각하기로 하면서 리조트 사업에서도 실질적으로 발을 빼게 된다.

그룹 관계자는 "핵심사업의 한 축인 금융부문을 매각하는 고통이 있지만 이번 자구계획으로 그룹의 유동성문제 해결과 함께 핵심부문에 역량을 집중해 지속성장의 틀을 갖춰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이날 내놓은 자구계획안을 통해 3조3천억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항만터미널사업의 일부 지분을 매각하고 벌크 전용선부문의 사업구조를 조정해 약 1조5천억원을 마련한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국내외 부동산과 유가증권, 선박 등도 4천800억원에 매각할 계획이다.

부산 용당 컨테이너 야적장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 싱가포르 소재 부동산과 보유중인 유가증권도 포함된다.

현대상선의 외자유치 추진과 현대엘리베이터유상증자, 현대로지스틱스 기업공개를 통해 3천2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하다. 반얀트리호텔도 매각한다.

현대그룹은 자구계획안을 통해 유동성이 확보되면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스틱스 등 주요 3개사 기준 부채비율이 200% 후반대로 대폭 낮아지고, 2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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