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영화 '쉰들러 리스트'= 양은 냄비를 비롯한 식기를 만들어 독일군에게 독점 납품해 큰돈을 벌게 된 쉰들러는 자신의 충직한 유대인 회계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당신을 만난 건 큰 행운이다. 당신이 없었더라면 내 돈 관리와 운용을 누구에게 맞길 수 있었단 말인가".

그는 그러면서 부자의 조건 2가지를 꼽았다. 다름 아닌 좋은 '의사'와 '회계사'를 곁에 두는 일이다. 명의를 만나면 죽어가던 이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니 언급을 피하고, 대신 회계사에 대한 인식은 많은 것을 곱씹게 했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전쟁 중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살인적이었다. 쉰들러가 사들였던 다이아몬드와 고급 향수, 포도주는 충성스럽고 머리 좋은 회계사의 '인플레 헤지' 전략인 셈이었다. 그의 회계사는 요즘 말로 하면 훌륭한 자산관리인 역할을 한 것이었다.

부자에게 자산의 관리와 유지는 건강관리보다 어려운 일이다. 매뉴얼도 없고, 정답도 없기 때문이다. 돈은 장롱에 퇴장해 둘 수 없는 움직이는 생물체다. 돈은 부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이다. 돈의 가치는 환경의 변화에 항상 가변적이다. 경기와 인플레, 성장률, 실업 등은 돈 가치에 늘 큰 영향을 준다. 정치적 급변, 전쟁 등이 발생하면 언제 '쪽박'을 찰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응전략을 짜야 한다. 지킬 것 없는 가난뱅이들은 발 뻗고 잠들지만, 부자의 침대는 언제나 근심이 가득한 이유다.

#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가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국내에서 부자의 기준을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으로 할 경우, 2011년 현재 약 14만8천명에 달한다고 한다. 2012년에는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약 16만명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 시간에도 한국인 15만명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의 규모는 2011년 현재 429조원, 전체 개인 금융자산의 약 19%에 이른다.

이들은 금융기관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고객이다. 회계, 세무, 법률 분야에 전문가 이상의 지식과 식견을 갖고 있어 웬만해서는 쉽게 잡을 수가 없다. 이들은 이벤트 개최, 영업점 리뉴얼 등 감성 마케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실질적 도움을 주는 세무, 외환관련 서비스 등에 '필'이 꽂힌다. 관계를 맺기는 어렵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오래 유지한다. 금융기관들이 담당 직원을 자주 교체하는 일은 이들 부자고객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미와 같다.

최근에 이들 부자(Super Rich)에 대한 마케팅이 지방은행과 중견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금융기관으로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개인 자산관리뿐만 아니라 가문(Family) 관리 서비스도 제공하는 부자 마케팅이 서울 강남뿐 아니라 강북권과 부산 해운대 등 신흥 부촌지역으로 치열하게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마다 자산관리의 역량이 뛰어난 해외 선진 금융기관과 전략적 제휴에 나서고 세분화된 고객에 대한 상품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어 한판 진검승부가 예상된다.

이 땅의 수많은 부자 '쉰들러'들에게 반가운 소식임이 분명한 것 같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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