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포맥스) 미국 중앙은행이 '매파의 시대'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스탠리 피셔 부의장과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은행 총재와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은 총재 등 매파의 색깔이 강한 지도부가 입성해 올해 새로 구성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성이 같은 스탠리 피셔와 리처드 피셔는 모두 매파 성향을 가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엔 얼굴마담으로 비둘기파 옐런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 뒤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매들이 포진한 모양새다.

'통화정책의 전설'로 통하는 스탠리 피셔는 경험과 학식에서 옐런보다 우위에 있기에 상왕(上王) 같은 부의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로런스 서머스의 스승, 벤 버냉키의 정신적 멘토 등 화려한 수식어를 가진 그가 연준 부의장에 영입된 것을 두고 국내에서는 "주현미 리사이틀에 나훈아가 초청 게스트로 온 격"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시절 행적을 보면 피셔는 연준에서 매파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피셔는 2009년 당시 주요 글로벌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주목을 받았다. 이스라엘이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시점에 피셔가 연준에 입성한 것은 어찌 보면 '시대의 부름'일 수 있다. 테이퍼링(양적완화의 점진적 축소) 과정에서 피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언론들은 피셔를 중도 매파로 분류하고 있다.

피셔의 인선은 연준에 대한 미국 정계의 공격에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 이스라엘 정계가 미국보다 더 혼란스러운 대립과 갈등 구도에 있었으나 피셔는 슬기롭게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임무를 수행했다. 미국에서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하며 옐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것으로 기대된다. 피셔는 이스라엘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다.

매년 투표권이 순환되는 지역연방은행 총재의 구성은 매파가 많아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비둘기파로 유명한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은 총재와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은행 총재가 투표권을 잃고 매파인 플로서 총재와 리처드 피셔 총재가 투표권을 얻게 됐다. 비둘기 2표가 빠지고 매파 2표가 새로 생긴 것이다.

올해 FOMC 구성(10명)은 비둘기파 4명, 중도 비둘기파 3명, 중도 매파 1명, 매파 2명으로 구성돼 작년의 비둘기파 6명, 중도파 4명, 매파 0명에 비해 확연히 매파적 스탠스로 이동했다.

FOMC 구성 변경과 함께 주목할 점은 연준 지도부가 정초부터 고(高) 성장론을 들고 나온 점이다. 옐런 의장을 비롯해 각 지역은행 총재들이 올해 미국 경제가 3%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을 쓰지 않아도 성장 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뜻으로 테이퍼링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효과가 있다.

실업률 하락과 성장률 제고 등 미국 경제의 회복 시그널이 강해질 수록 테이퍼링은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2월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자 수가 7만명(예상 20만명)에 그쳤으나 큰 틀에서 고용회복의 추세를 꺾었다기보다는 날씨 등 일시적 요인으로 인한 충격이라는 점에서 테이퍼링의 기조를 흔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연준 지도부의 구성에서 환율 전문가가 배치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피셔 부의장은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시절 환율에도 손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셰켈화 저평가를 유도해 경제성장을 유도한 그가 미국 달러화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거리다. 이번에 새로 연준 이사에 지명된 라엘 브레이너드 전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은 G20(주요 20개국) 회의에서 환율 문제를 조율한 '환율 전문가'다. 연준 지도부에 환율 전문가가 많아졌다는 점은 중요한 변수다. 테이퍼링이 몰고 올 달러 강세 분위기를 이들이 어떻게 마사지할지 주목된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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