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나는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의 하나인 자랑스러운 외환딜러다. 새해에도 회사가 허락한다면 매일 오전 9시에 딜링룸(Dealing Room)이라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 접속해 오후 3시에 벗어나는 생활을 반복할 것이다.

하루에 100억 달러가 거래되는 곳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외환딜러의 생활은,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반복해서 가상공간에 접속했다가 현실로 빠져나오는 것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일과 중에 나의 뇌는 현실 삶과 단절된 일종의 '블랙 아웃'된 공간에 머문다. 이곳은 가상의 세계지만 상상의 세계는 아니며 현실보다 더 처절하게 현실적인 장소다. 이곳은 어쩌면 가장 잘 묘사된 현실일지도 모른다.

딜링룸에서 접속돼 만나는 사람들은 현실과는 또 다른 역학관계로 구성된다. 롤러코스터가 수시로 반복되는 이곳에서 나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가상과 현실에서 동시에 고통과 기쁨을 체험한다. 여기에서 나는 때론 식은땀을 흘리고 겁에 질리고, 때론 승리감에 도취하는 자신감과 초현실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기에 접속된 이들은 나와 같이 항상 무엇인가를 예언하고, 주문을 외우며 늘 고뇌에 차있다. 현실과 닮았지만 동시에 현실과 다른 곳이며, 이곳에서 얻은 성취는 곧장 현실에서의 보상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어떨 때는 내가 활동하는 이곳이 진짜 현실인지, 일과 이후 가족과 보내는 장소가 가상현실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이곳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한결같지 않다. 한 전직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이곳을 추겨 세우기도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한 대통령은 이곳 종사자를 탐욕의 화신들로 평가하고 "망치로 때려주고 싶다"고 증오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외환당국자들은 이곳을 항상 통제하고 감시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정초부터 한 고위 당국자는 손자병법 군쟁(軍爭)편의 '부동여산(不動如山), 동여뇌정(動如雷霆)"을 언급하며, 여차하면 천둥 벼락처럼 응징하겠다고 접속자들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당국자 역시도 이곳에서는 가상 세계에만 존재하는 하나의 가상 존재일 뿐이다.

새해에도 이 공간에는 아베노믹스로 촉발된 원-엔 환율의 흐름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엔저 원고 흐름이 빨라질 가능성에 접속자들 모두 귀가 쫑긋하다. 올 4월로 예정된 일본의 소비세 인상과 추가적인 양적완화 가능성이 주요한 엔화약세 요인이다. 엔저 효과로 일본의 수출이 개선되고 있다. 원-엔 환율이 2012년 10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으니 J커브 효과 탓에 1년 정도의 시차가 나타나는 걸 고려하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 상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의 하락 효과가 본격화한 것 같다. 올해 3%대 후반의 GDP 성장을 가로막을 강력한 위협요인이다. 이를 우려해 외환당국은 작년에도 가상공간에 빈번하게 등장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새해에도 나는 매일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며 환희와 고통을 느낄 것이다. 양자 물리학에서 말하는 '평행우주론'에서 전자가 이쪽저쪽을 동시에 왔다갔다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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