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성규 문정현 기자 = "은행은 지속 가능(sustainable)해야 합니다. 때문에 단번에 모든 것을 바꾸는 혁신보다는 꾸준하게 변화는 진화가 중요합니다."

작년 금융가를 들썩이게 했던 깜짝 뉴스를 꼽으라면 단연 '대한민국 여성 행장 1호'인 권선주 기업은행장의 취임일 것이다.

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금녀의 벽을 허물며 변화의 선봉장을 맡은 그에게 앞으로의 운영철학을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러니하게도 급격한 '변화'는 지양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저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참 존경하는데, 그가 말했죠. '현재의 것 가운데 최선을 선택하고,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요. 지금까지의 정책들도 모두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해온 것들인데, 모두 바꾸기보다 새로운 것을 보탠다던가, 비효율적인 것을 없애는게 더 낫습니다."

연합인포맥스는 지난 13일 영국 정치·경제·문화의 눈부신 전성기를 이룩했던 엘리자베스 1세처럼 IBK의 번영을 꿈꾸는 권 행장을 본점 행장 접견실에서 직접 만나 업무와 개인사를 넘나드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결국은 '소통' = 권선주 행장은 1978년 은행원 생활을 시작한 36년차 뱅커다. 은행원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가운데 은행원들이 많아서였단다. 입행 당시 겪었던 어려움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주산을 잘 못해서 엄청 고생했어요. 그땐 컴퓨터도 계산기도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곱셈 나눗셈을 모두 주산으로 계산했죠. 적금 중도해지 이자율도 주산으로 계산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근무를 했었는데, 일요일까지 출근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판 연습을 했었죠. 한 달을 꼬박 하니 어느 정도 하겠더라고요."

권 행장이 가장 먼저 발령받았던 곳은 동대문 지점이었다. "주변에 소상공인들이 많았어요. 비닐봉지에 싸들고 온 돈을 일일이 손으로 세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게 떠오릅니다."

주산에 끙끙하던 행원이 지금은 기업은행의 최정상에 올랐지만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그리 만만치 않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여성 CEO로서 편견을 어떻게 깨느냐는 문제다.

"결국 어떻게 리더십을 갖느냐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이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서로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그러려면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고, 타당성이 있어야 설득이 가능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직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보는 벌써 시작됐다. "이미 사업본부별로 점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업무보고 때는 들을 수 없는 중요한 얘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고객을 일일이 방문하기 어려우니 고객이 많이 모이는 조찬회에 가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죠. 지금까지는 부행장과 본부 부장들과 식사했는데, 앞으로는 팀장과 지점 직원들도 만날 예정입니다."

직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춘 행장이 되는게 목표지만, 공과 사만큼은 뚜렷하게 구분하겠다는 단호한 면도 드러냈다.

"기본적으로 저는 제 자신이 남에 대한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굉장히 따끔하고 단호한 면도 있어요. 그런 양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과 사를 엄연히 구별합니다. 워낙 은행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아는 직원들이 많고 그분들이 저를 개인적, 인간적으로 좋아할 수 있지만 공사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인간 권선주와 행장 권선주는 다른 것입니다."

▲필요할 땐 주변의 도움 받아라 = 여성 CEO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직장과 가정을 어떻게 병행하느냐'는 것이다. 권 행장에 똑같은 질문을 했더니 자신의 한계를 먼저 인정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완벽하게 일하는 어머니는 허상이라고요. 존경하는 분도 양쪽 일을 하는게 어렵다고 말하더라고요. 일과 가정을 꾸려나가면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제대로 못해낼 때도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땐 혼자 다 끌어안지 말고 어떤 도움이든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행장이 되면서 예전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어지는 점은 어쩔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지금도 아침만큼은 꼬박꼬박 차려준단다.

"예전에는 휴일에 일주일치 장을 다 봐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해두곤 했었는데, 지금은 주말에도 자주 은행에 나오다보니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아침식사만큼은 꼭 차려주고 나옵니다. 오늘 아침도 하고 나왔어요."

▲고객이 평생 떠나지 않는 은행 = 그렇다면 행장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그가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업은 무엇일까. 권 행장은 기업은행을 평생 고객이 머무는 은행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간 내실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성장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진정한 내실은 은행의 기본인 성장성과 건전성, 수익성을 모두 굳건히 다지는 것이예요. 그간 고객기반을 늘려 1천400만명의 고객이 거래하는 은행으로 발돋움했는데, 이제는 이들과 생애 거래관계를 맺는 '평생고객화'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황혼을 맞는 노년층까지, 창업 기업부터 해외진출 기업까지 모든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겠다는 것이다. 권 행장은 기업은행의 평생고객화 전략이 계좌이동제 도입으로 예상되는 은행권의 무한경쟁체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포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만간 이뤄질 조직개편에도 이 같은 목표가 반영됐다.

"마케팅전략부에 시장분석팀을 신설할 예정입니다. 평생고객화를 위한 추진 과제를 발굴하는 팀입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기업은행을 떠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프로필>

-1956년생, 경기여자고등학교·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78년 2월 중소기업은행 입행

-1998년 방이역지점장

-2001년 역삼중앙지점장

-2003년 서초남지점장

-2005년 CS센터장

-2007년 PB사업단 부사업단장

-2008년 외환사업부장

-2010년 서울중부지역본부장

-2011년 카드사업본부 부행장

-2012년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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