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부텍사스중질유((West Texas Intermediate)가 글로벌 경제질서에 미국의 테이퍼링에 버금가는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과거 10여년간 브렌트유나 두바이유에 비해 비쌌던 WTI가 최근 들어 더 싸졌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WTI의 가격 동향이 글로벌 경제의 걸림돌이었던 미국의 제조업 강국으로서 부활을 예고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와 경제계는 제대로 대응할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연합인포맥스가 보유한WTI유,두바이유,브렌트유 등의 가격 동향을 주간 평균으로살펴보면 2011년부터 차별화된 패턴이 나타난다. 두바이유와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1달러라도 비쌌던 WTI가 2011년부터 더 싸게 팔리는 현상이 강화된다. WTI가 배럴당 10달러 이상 두바이유나 브렌트유보다 싸게 팔리는 등 최근 들어 가격 역전 현상이 더 강화되고 있다.

WTI 의 가격 하락은 이른바 셰일가스 혁명의 후폭풍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셰일가스 혁명은에너지 지형 변화를 넘어 세계 경제 질서 재편의 원동력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천연가스 가격(헨리허브 가격 기준)은 2008년 8~9달러/MMbtu(25만㎉의 열량을 내는 가스양)선에서 최근 3~4달러/MMbtu까지 내렸다. 2012년에는 2달러/MMbtu 아래까지 떨어져 생산량 조절을 위해 일부 광구가 시추를 중단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제치고 지난해 세계 최대의 산유국 자리에 올라섰다. 셰일가스 개발로 미국은 이른바 에너지 자급자족국 반열에 올라선 데 이어 에너지 수출국 지위까지 넘보고 있다.

에너지 지형 변화는 미국 제조업 부활로 이어지고 있다. 벌써 다우케미컬, BASF 등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들도 값싼 셰일가스를 바탕으로 에틸렌 등을 제조하는 에탄크래커 증설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미국화학연합회(ACC)는 미국 기업이 오는 2020년까지 717억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석유화학 산업이가격 경쟁력을 갖추면서 연관 산업도 가파른 속도로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벌써 제조업에 대한 실효 세율을 25%로 낮춰 주는 등 세제지원까지 동원하면서 총력 지원에 나섰다.

미국 제조업이 부활조짐을 보이면서 한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시련의 나날을 보낼 것으로 점쳐진다. 단가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PVC 등 에틸렌계 석유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에틸렌 생산 비용은 이미 미국 내 석유화학 기업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미국이 천연가스에서 나오는 에탄크레커를 기반으로 에틸렌을 제조하는 반면 한국 등 동북아 지역은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에틸렌 생산 비용은 톤당 600달러지만, 동북아지역에서는 1천~1천200달러가 들었다.

에너지 생산 단가 인하는 중국과 동남아 등 저임금 국가로 떠났던 제조업체들이 해외 공장을 닫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해 세탁기와 냉장고, 난방기 제조 공장을 중국에서 켄터키주로 이전했다. 구글은 지난해 미디어플레이어인 넥서스Q를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만들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는 물론 서울 채권.외환.주식시장도 미국의 테이퍼링 동향과 함께 WTI 가격 동향도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WTI 가격 동향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경제질서의 재편 움직임이 올해부터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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