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공부하다 보면 '시대의 부름'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가 있다. 한국사에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등장을 들 수 있고, 미국사에서는 남북전쟁 시기의 링컨의 존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시대가 요구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미국을 침몰직전으로 몰아넣었던 금융위기 때 시대의 부름을 받은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30년 미국 대공황을 전공한 버냉키 의장에게 미국 금융위기 해결이라는 임무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사실 버냉키 의장은 2005년 취임 당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그늘이 너무 짙었기 때문이다. 마에스트로라는 찬사를 받으며 미국 경제대통령 노릇을 했던 그린스펀에 비해 버냉키는 경륜이 한참 모자른 신참이었을 뿐이다.

당시 미국 경제팀은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주도권을 쥐고 티머시 가이트너(당시 뉴욕연방은행장)가 보좌하는 구도였다. 워싱턴의 폴슨, 뉴욕의 가이트너가 서로 경제·금융정책을 조율한 셈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폴슨과 가이트너,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장 3인방이 위기해결을 주도했고 버냉키는 한발 물러나 있었다.

버냉키의 진가가 드러난 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후다. 버냉키는 2008년 11월 1차 양적완화를 통해 월스트리트에 달러를 풀었다. 이듬해 3월 2차 양적완화에 이어 2010년 11월에 3차 양적완화까지 닥치는 대로 달러를 풀었다. 금융위기가 생겼을 때는 헬리콥터에서 돈을 풀어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하고, 그 해결에 집중한다는 지론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훗날 이는 '버냉키 독트린'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금융시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연준이 개입할 수 있다는 '버냉키 독트린'은 시장의 문제는 제외하고 통화정책을 짜야 한다는 전임 그린스펀 독트린과 대비된다. 과감한 돈 풀기로 위기 극복을 시도한 버냉키의 철학은 그 후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버냉키 의장은 오는 31일 8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연준을 떠나기 한달 전 그는 마지막 과제인 양적완화 축소의 첫발을 뗐다. 역사적으로 그를 평가한다면 비정상의 시대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정상을 극복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과제인 비정상의 정상화는 후임자인 재닛 옐런 의장-스탠리 피셔 부의장 콤비가 완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기의 구원자인 버냉키지만, 그를 비판하는 전문가도 아직 많다. 버냉키가 풀었던 돈이 실물경제로 가지 않고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의 배만 불렸다는 이유에서다. 양적완화로 푼 돈을 회수하기 결코 어려울 것이며, 시장을 휘어잡지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하는 뒷북 의장이었다는 것도 비판의 단골메뉴다.

그러나 8년의 재임기간 동안 과감한 결정으로 침몰하는 미국 경제를 구해낸 건 누가 뭐래도 그의 공적이다. 그를 비판하는 누구도 2008년 버냉키의 위치에서 그만큼 결단력 있는 결정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책집행과 정책 비판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은 제방이 무너질 위기에서 마을을 구한 네덜란드 소년에 비유할 수 있다. 만약 소년이 제방에 구멍이 난 것을 보고서도 그걸 만든 회사의 잘못이라며 손으로 막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익사했을 것이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월스트리트는 제방에 구멍을 낸 사람들이지만 그게 미워서 제방을 막지 않았다면 미국 전체가 침몰했을 것이다.

(국제경제부장)

(서울=연합인포맥스)

jang73@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