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나는 삼성의 간판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그룹의 핵심 고위 임원을 역임하고 오래전에 은퇴한 소위 그룹의 진골(眞骨) 출신 인사였다. 현직에 있을 때 보고 들은 이야기를 사후에 하지 않는다는 묵시적인 조건으로 사장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고문직을 3년간이나 지내며 과분한 녹(祿)을 받았다. 이런 연유 등으로 나는 평소에 삼성 관련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입 무겁기로 유명한 사람 축에 속하지만, 최근 그룹의 신입사원 모집과 관련한 '대학 총장 추천제' 파동을 보며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사태가 다른 문제도 아니고 그룹의 근본과 미래를 결정하는 인사 문제여서 매우 놀랐고, 이의 사후 처리과정도 완벽주의 '관리의 삼성'에 흠집을 내는 일이라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인재를 뽑는 일을 그룹이 직접 챙기지 않고 대학에 위임하는 형태로 위험천만하게 비친 점이다. 또 사회에 미칠 파문을 사전에 자세히 계산하지 못한 것, 그리고 일의 사후 수습도 우왕좌왕하는 아마추어 모습을 보인 점 등이다.

창사 이래 삼성 인재 선발의 근본 철학과 원칙은 '당신의 화려한 과거 경력과 이력은 큰 의미가 없다. 앞으로 어떤 인재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또 미래에 어떻게 과업을 설정하고 달성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선대 이병철 회장의 '제일주의'는 '인재 제일주의'라는 의미였고, 이건희 회장도 이에 못지않다. 10년 후 수종 사업 연구결과 보고서에, 무슨 변화가 올지 어떤 아이템이 유망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특급 인재를 보유하는 일'만 제대로 챙기면 언제나 기회가 온다는 결론에 흡족해한 것이 좋은 예다.

예전에 알던 언론계 종사자들이 이번 일이 터진 것이 혹시 권력 이양기에 이건희 회장의 장악력이 떨어져 내부에 뭔가 모를 문제점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가타부타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기본 핵심에 해당하는 인사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다른 데서 구명이 생길 개연성도 큰 만큼 사전 진단과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현재 삼성그룹은 창업 이후 대·내외 환경의 대격동과 회장 후계체제 구축이 겹쳐 어느 때보다 엄혹한 시기다. 세상과 시장은 그룹 권력의 이양이 완성되기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진행과정에서 어느 것 하나든 삐끗하면 한방에 훅 갈 수 있다.

그룹의 후계 구도와 관련해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을 후임을 결정하는 일은 매우 큰 사안이다.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그룹의 위상 때문에, 후임 회장은 각 계열사의 업종 전문지식과 기술의 흐름과 핵심을 꿰뚫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외교,국방,스포츠,문화 등에 대한 깊은 안목과 식견을 가져야 하고, 이를 아우르는 종합력과 판단력, 비전과 리더십도 갖춰야 한다.

이병철, 이건희 회장까지는 대체로 상기 요건을 겸비한 인물 범주지만, 이재용,이부진,이서현, 3명의 자녀는 반듯하고 열심히는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고민도 현재 바로 이 지점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비중이 너무 크다 보니 후계 구도를 통한 그룹의 재조정 과정도 살얼음판인 게 사실이며, 이 과정에서 자칫 핀란드의 노키아와 같은 사례가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노키아 없이도 핀란드 국가 경제가 중견, 중소, 벤처 기업의 생태계가 복원되면서 더 튼튼해졌다는 사례는 삼성그룹의 신경을 상당히 날카롭게 하고 있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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