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국제금융계에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많이 돌았다. 최강대국 미국이 결코 금융위기에 빠질 리 없다는 맹신에서 깨어나라는 경각심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이 망하면 세계 경제가 망하고,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미국은 건재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선진국들이 "이번엔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처럼 신흥국들은 "우리는 다르다"라는 말을 한다. 다른 신흥국과 달리 나만은 건강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위기에 빠지면 브라질이 "우리는 다르다"고 하고, 인도가 위기에 빠지면 중국이 "우리는 다르다"라고 하는 식이다.

차팁 바스리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최근 신흥국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자 "우리는 터키.아르헨티나와 다르다"고 했다. 한국의 정부도 신흥국 위기와 관련해서는 차별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경상수지도 흑자고, 외환보유액도 튼튼하고, 경제펀더멘털이 좋기 때문에 위기를 겪는 신흥국과 다르다는 의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신흥국의 위기는 한 묶음으로 보면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처럼 외환보유액이 200억달러 남짓 남은 나라도 있고, 3천억달러가 넘는 우리나라처럼 튼튼한 나라도 있다. 이 두 나라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러나 신흥국에 포함된 우리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신흥국 위기는 일정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허약한 나라부터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튼튼하다고 생각되는 나라에도 전염된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이 금리인상을 했을 때 멕시코가 가장 먼저 위기에 빠졌으나 몇년 뒤 아르헨티나가 위기에 빠졌고,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뒤 태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까지 전염됐다. 허약한 나라부터 감염이 시작되고, 문제없다고 생각됐던 나라로 불길이 이동한 셈이다.

이번 신흥국 위기는 아르헨티나에서 점화돼 터키와 인도네시아가 위기국으로 등장하고, 동유럽 3국(헝가리,폴란드,체코)이 거론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어느 나라가 구제금융을 받고 위기에 빠질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부실한 순서대로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차별화된 것이 아니라 후순위에 있는 지 모른다. 1990년대 후반 다른 나라들이 위기를 다 겪고 난 뒤에 뒤늦게 위기의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경제펀더멘털이 과연 견고한 것인지 되새길 필요도 있다.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 등 거시경제지표는 좋지만, 가계부채와 내수부진, 중산층과 서민생활 붕괴, 삼성과 현대차 등 일부 재벌에 한정된 부의 집중은 심각한 도전과제다. 중국 산업의 약진과 미국과 일본 제조업의 부활로 대표되는 넛크래커 현상은 중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우리에게는 미국 시장이 좁아지고, 중국 시장에선 내몰리고 있다. 우리 제조업의 먹을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신흥국 위기를 자극하는 미국의 '테이퍼링'이 단 시일 내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소 1년이고 길면 2년 이상 걸릴지 모른다. 이것이 끝나면 미국은 본격 긴축에 들어갈 수도 있다.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고, 양적완화로 풀었던 돈을 거둬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은 신흥국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구전략을 마라톤에 비유하면 지금은 출발 전에 신발끈을 고쳐 맨 정도에 불과하다. 출발 선에 서서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면 최종목적지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연준도 모르고 신흥국도 모른다. 이번에도 우리가 다르려면 2~3년 후에도 여러 도전과제를 극복하고 튼튼한 경제체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봐야 할 것이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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