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침묵은 금이요, 연설은 은이다."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 말의 속뜻을 절감한 사람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일 것이다. 그는 지난주 의회 출석을 계기로 연설보다 침묵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버냉키 의장이 3차 양적 완화(QE3)에 대해 침묵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그의 침묵을 QE3를 배제한 것으로 해석했다.

# 버냉키의 발언 이후 금융시장은 깜짝 놀랐다. 달러 강세는 더욱 힘을 불렸고 美 국채선물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주문실수가 나온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정도였다.

美국채 2년물과 10년물의 스프레드는 3주 만에 처음으로 벌어졌다. 미국의 경기 회복과 버냉키의 QE3의 배제 가능성에 10년물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잘 나가던 뉴욕증시는 급제동이 걸렸다. 다우지수는 13,000선 밑으로 밀려났고 나스닥지수도 3,000선 고지를 다시 내줬다. 공교롭게도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가 심리적으로 중요한 레벨에 도달했을 때 버냉키의 말이 큰 영향을 준 셈이다.

# 버냉키 의장이 침묵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가 좋게 나오고 있어서다. 특히 고용지표가 계속 좋아지고 있다. 일부 지표는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장기침체에 빠졌던 고용의 숨통이 터졌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경제가 회복되는데 경기부양책(QE3) 얘기를 꺼내는 건 너무 앞서나간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국제유가의 급등도 버냉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유가가 급등하면 회복기에 들어선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유가 급등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우려도 있다. 성장과 물가를 동시에 봐야 하는 중앙은행 총재 입장에선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섣불리 QE3 얘기를 꺼내면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이런 측면에서 버냉키의 침묵은 QE3에 대한 '배제'가 아니라 '유예'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 버냉키의 침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보려면 미국 고용과 유가를 확인하면 된다. 9일 나올 2월 고용지표는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2월 실업률은 8.2%로 전월의 8.3%보다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자 수는 21~24만명으로 예상된다. 3개월 연속 2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미국 고용시장의 꽃이 필수록 QE3는 그만큼 더 멀어질 것이다.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으로 110달러 부근에 거래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송유관 폭발설로 100달러를 넘겼다가 3일 현재 106달러선까지 내려왔다.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는 120달러 수준이다. 국제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탈지 150달러를 넘볼지 올해 금융시장의 최대이슈가 될 것이다. 유가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버냉키의 선택도 달라질 것이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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