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지배구조 진단] 중앙회가 인사·돈줄 쥐락펴락

2024-04-29     이현정 이수용 기자

농협금융 회장보다 막강한 비상임이사…중앙회장 인사권 통로

농협금융 5년간 번 10.2조 중 5.4조 중앙회가 빼가

브랜드사용료 명문화한 '농협법'…금융지주 자본력 제한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이수용 기자 = 농협중앙회의 NH농협금융지주 경영 부당 개입 문제는 농협만의 독특한 지배구조에서 시작된다.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으며, 은행·증권·생명·보험 등을 손자회사로 두고 있다.

중앙회가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견제 장치 없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중앙회는 농업협동조합법과 지배구조 내부 규범을 근거로 농협금융 인사권과 돈줄을 쥐고 있다.

농협중앙회장과 가까운 현직 조합장이 농협금융 비상임이사를 맡아 이사회 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농협' 브랜드 사용료와 배당 등으로 매년 1조원 안팎을 거둬들이고 있다.

대주주가 금융 계열사의 자금을 이처럼 거둬가면서 농협금융의 건전성과 자본력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회 '연결고리' 비상임이사…막강 권력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최근 비상임이사에 박흥식 광주비아농협 조합장을 선임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취임 후 공석이었던 자리가 한 달 만에 채워진 것이다.

농협금융 비상임이사는 농협중앙회장의 임기와 함께하는 '러닝메이트'와 같은 존재다.

중앙회장이 교체되면 본인 임기와 상관없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농협금융의 비상임이사는 형식상 금융지주 회장 추천으로 선임하지만, 농협중앙회장과 가까운 현직 조합장이 맡는 게 관례처럼 됐다.

농협금융 지배구조 내부 규범에는 아예 비상임이사 선임 조건을 '농·축협 전·현직 조합장, 농협중앙회 및 계열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자'로 못 박아두고 있다.

이렇다보니 비상임이사의 권한이 금융지주 회장보다 막강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비상임이사는 금융지주 이사회 내 핵심기구인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해 금융지주 회장부터 은행 등 자회사 대표와 사외이사까지 주요 경영진을 추천한다.

그런데 금융지주 회장은 정작 임추위원에 포함도 되지 않아 추천 권한도 없다.

또 비상임이사는 계열사 경영진을 관리·평가하는 것은 물론 급여, 성과급 등을 결정하는 보수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비상임이사뿐 아니라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이종백 사외이사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 출신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농협중앙회 출신 인사가 농협금융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을 꿰차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금융지주의 핵심인 NH농협은행 이석용 행장은 직전 중앙회 기획조정본부장을 지냈고, 권준학 전 행장도 같은 이력을 갖고 있다.

윤해진 NH농협생명 대표와 서국동 NH손해보험 대표도 직전에 각각 중앙회 경남지역본부장과 상호금융기획본부장을 맡았다.

윤성훈 농협카드 대표와 오세윤 NH저축은행 대표, 서옥원 NH농협캐피탈 대표까지 모두 중앙회 출신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사회 내에서도 서열이 있는데, 중앙회 입장을 대변하는 이사들의 의견에 반대 입장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인 것으로 안다"면서 "농협금융이 중앙회 100% 자회사이다 보니 경영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순 없지만, 금융지주 회장에게도 인사 추천권을 부여하는 등 선진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5년간 브랜드사용료·배당만 5.4조…자본 활용 '브레이크'

비상임이사의 권한 행사뿐 아니라 농협중앙회는 브랜드사용료와 배당을 통해 농협금융의 돈줄을 옥죄고 있다.

금융권의 자본 적립과 활용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농협금융은 자본력과 자본 적정성에서 타 금융지주보다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5년간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으로부터 브랜드사용료와 배당을 통해 거둬간 돈만 약 5조4천258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농협금융의 순이익 합계가 10조2천726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 셈이다.

농협금융은 농업협동조합법 제159조2에 따라 농업협동조합의 명칭을 사용한 데 따른 농업지원사업비(브랜드사용료)를 매출액의 1천분의 25 범위 내에서 지급해야 한다.

농협금융의 배당 성향 또한 지난 2021년 42.5%, 2022년 30.3%, 2023년 31.3%로 집계됐다.

브랜드사용료에 더해 매해 순이익의 30% 이상을 농협중앙회에 배당하다 보니 농협금융은 자본의 적립과 활용을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고 이는 농협금융의 이익 성장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배당은 금융당국이 조율할 수 있는 문제라더라도, 브랜드사용료는 농협법에 근거한 지급분이다 보니 당국 차원에서 관리할 수 없는 구조다.

이익 규모가 유사한 우리금융지주와 비교하면 농협금융의 보통주자본(CET1) 비율은 지난 2021년 12.5%에서 2023년 12.88%로 나타났고, 이는 같은 기간 11.4%에서 12%를 기록한 우리금융보다 높은 수준이다.

반면, 우리금융의 보통주자본은 2021년 21조9천억원에서 2023년 26조3천억원으로 4조4천억원을 늘렸으나, 농협금융은 같은 기간 19조8천억원에서 23조5천억원으로 3조7천억원을 늘렸다.

자본의 증가 폭이 작다 보니 위험가중자산(RWA) 측면에서도 우리금융은 192조5천억원에서 219조7천억원까지 늘릴 동안 농협금융은 159조원에서 182조9천억원까지 증가했다.

농협금융은 브랜드사용료와 배당금 지급을 고려해야 하므로 적극적으로 영업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금융은 중앙회 지급분이 있다 보니 RWA를 공격적으로 쓰기보다는 가진 자원을 안정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시장이 좋을 때 수익을 제한하는 요소가 되고, 반대로 시장이 안 좋을 땐 이를 완충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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