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뜨거운 감자된 '이사의 충실의무'…국회서도 쟁점

2024-06-11     한종화 기자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21대 국회 종료로 폐기됐던 '이사의 충실의무' 관련 상법 개정안이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돼 찬반 논란이 뜨겁다.

11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상법 제382조의 3에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그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 부분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수정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이용우 의원 등이 발의했던 법안이 임기 종료로 폐기되자 다시 발의한 것이다.

회사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여론은 분할한 자회사의 상장으로 기존 모회사의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2020년 LG화학이 물적분할을 결의하면서 신설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하겠다는 내용을 공시한 후 LG화학의 주가가 크게 하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2022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유사한 상황에서 주주에게 보상을 주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윤석열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논의의 불씨가 이어졌다.

다만 경영진이 주주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규정에 재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회사가 인수·합병(M&A)이나 연구개발(R&D)에 나서야 할 때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들이 단기적 이익을 위해 배당을 요구하면서 투자에 반대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경제인협회의 관계자는 "그동안은 이사가 회사에만 충실의무를 다하면 됐는데 주주까지 고려하게 되면 주주와 회사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주주는 단일한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며 "개미 투자자, 대주주, 행동주의 펀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이익이 다 서로 다르다. 그러면 주주 간 상충하는 문제에서 도대체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 밖에 소액 주주의 소송 남발 우려, 회사 법인과 사원의 이익을 구별하는 우리나라 상법 체계와의 충돌 등이 반대의 근거다.

그러나 정준호 의원실은 반대론자들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의원실에 따르면 비례적 이익을 규정한 주된 목적은 주주 간 부의 이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회사가 M&A에 실패해 손해를 보더라도 모든 주주가 다 같이 손해를 보는 경우에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침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특정 주주만 이익을 보고, 나머지 주주는 손해를 보는 경우라야 비례적 이익의 침해가 발생한다.

의원실의 관계자는 "회사가 투자했다가 잘못되면 소송에 걸리고, 주주에게 물어줘야 하는 그런 법안이 아니다"며 "대주주나 소액주주가 모두 주식 수만큼 비례해서 손해를 본다면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관련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법한 투자나 R&D가 아니라, 대기업의 계열사 간 합병에서 발견되는 일부 사례나 총수 소유 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이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얘기다.

그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주주 간 부가 이전되는지 여부"라며 "계열사 간 합병 비율 등이 문제가 생기면 회사 가치는 그대로인데 대주주는 이익을 보고 소액주주는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 돼버린다"고 강조했다.

주주의 이익을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포함시키는 문제와 관련해 최근 정부도 전향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정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규정이라는 이유를 들며 법안 추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가 최근 방향을 다소 선회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있다"며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법무부가 6~7월 공청회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 원장은 "그동안 쪼개기 상장 등 투자자 이익에 반하는 기업 의사결정 사례가 반복되고 있으나, 소액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수단 미비로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훼손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한편, 법제화를 통해 경영 판단 원칙을 명료하게 해 실효성을 확보하는 등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쪼개기 상장 (PG)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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