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이 불 당긴 '배임죄 폐지'…대통령실도 "검토해야"
(서울=연합인포맥스) 신윤우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에 더해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실도 배임죄 폐지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7일 최근 재계 일각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를 위한 상법 개정과 관련, "배임죄를 폐지하는 것을 전제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복현 금감원장의 입장과 공통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배임죄 폐지도 동시에 고려해 상법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이 원장은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나 "삼라만상을 다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배임죄는 현행 유지보다 폐지가 낫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원장은 상법 개정에 따라 경영진 대상 소송이 남발될 수 있는 만큼 경영진 면책 요건과 배임죄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1대 국회 종료로 폐기된 '이사의 충실 의무' 관련 상법 개정안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는 상법 제382조의 3에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그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 부분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수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업들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될 경우 이사들을 배임죄로 처벌하기 위한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적용된다.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넓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처벌도 과중하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려면 배임죄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게 대통령실의 생각이다.
실제로 미국에는 배임죄가 없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가 설득력을 얻는다.
대통령실은 기업의 결정이 어떤 주주에게는 충실하고, 어떤 주주에게는 충실하지 않은 상황도 펼쳐질 수 있어 누구라도 쉽게 배임죄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자 간담회에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언급한 데 이어 이 원장과 대통령실이 이와 관련된 배임죄에 대한 의견을 내놓은 만큼 상법 개정 논의가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재계는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 등에 구체적인 입장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적으로 상법 개정에 반대하지만 배임죄 폐지라는 전제 조건이 추가로 제시되면서 고민이 필요한 분위기다.
정부가 상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 배임죄 폐지를 병행하는 방향을 구체화하고, 국회 논의에서도 진전을 보일 경우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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