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규제'했더니 정산지연·유용…'티메프 방지법' 추진한다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티몬과 위메프(티메프)의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가 불거진 이후 법률과 규제의 미비가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입점 업체에 대한 최장 70일의 정산 지연·정산금의 유용 문제 등은 일차적으로 큐텐그룹의 잘못된 경영 방식에 기인했지만, 이를 자율 규제에만 맡겨둔 제도적 허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이에 국회에서는 금융당국이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의 건전성을 보다 강하게 규제할 수 있는 법안, 온라인 플랫폼 입점 업체에 대한 정산 주기를 단축하고 정산금의 유용을 방지하는 법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 PG사에도 강제 조치 가능해야…티메프 방지법 준비
2일 국회에 따르면 이번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는 사태의 원인으로 규제의 허점을 지적하는 위원들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은행 등 규제가 강한 다른 금융 산업과 달리 전자상거래 분야만 업체 자율에 맡겨둔 부분이 유독 많았다는 문제 제기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은 "(정부가) 2020년도에 발표한 디지털 금융 혁신방안, 자율 규제라는 명목으로 이커머스 업체를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해 왔다"며 "소비자·자산 건전성과 관련해 전혀 규율하지 않은 정부 정책의 실패에 (이번 사태가) 기인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온라인 쇼핑몰이지만 동시에 전자지급결제대행(PG)업자이기도 하다. PG사는 전자금융거래법상 허가 대상인 다른 금융업자와 달리 '등록' 대상이다.
금융 당국은 허가 업체에 대해서는 전자금융거래법 42조에 따라 자본금의 증액, 이익배당의 제한 등 경영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티몬과 위메프는 등록 대상 업체기 때문에 이 정도의 강한 규제를 적용하지 못했다.
티몬·위메프의 자본 건전성 문제를 인식한 금융감독원은 2차에 걸쳐 두 업체와 경영개선협약을 체결했지만 이 업무협약(MOU)이 준수되지 못했고, 금감원도 준수를 강제할 방도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현안 질의에서 "21대 국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상 조금 더 강한 규제의 수단을 달라고 (국회에) 요청한 바는 있다"며 "충분히 강하게 입법부에 요청을 못 한 잘못은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티몬이나 위메프 같은 등록 전자금융업자를 대상으로 금융당국이 적기 시정 조치 등 필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티메프 사태 방지법'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커머스 회사가 플랫폼 입점 업체에 정산 대금 지급을 지연시킬 수 있는 제도적 허점도 문제다.
최장 70일에 달했던 티몬·위메프의 정산 주기를 플랫폼과 입점 업체 간 민사상의 문제로만 남겨뒀다가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얘기다.
정산 주기 문제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이나 온라인플랫폼 거래 공정화법 제정 등을 통해 해소될 수 있을 전망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정산 주기와 관련해서는 법제화 부분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산 전까지 묶인 자금을 플랫폼이 유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입법도 논의되고 있다.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는 국회에 출석해 티몬·위메프 판매 대금을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인 '위시' 인수자금으로 끌어다 썼다고 인정한 바 있고, 이에 대해 400억원대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의원은 "머지포인트 사태 이후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으로 선불충전금의 50% 이상을 신탁, 예치, 지급보증보험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며 "이런 방식을 전자상거래 판매대금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은 "정산을 위해 유입된 자금은 정산에만 사용하는 등 판매 대금을 제3의 금융기관에 맡기는 에스크로 정산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해 보겠다"고 말했다.
테이블 왼쪽부터 박준석 전자지급결제협회 회장, 류화현 위메프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 2024.7.30 kjhpress@yna.co.kr
◇M&A 심사시 당국의 유일한 기준은 '경쟁제한성'…재무 문제까지 보기는 어려워
국회 현안 질의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무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큐텐그룹의 티몬·위메프 인수를 허가해 준 결정도 도마에 올랐다.
김남근 의원은 "기계적으로 판단하다 보니 소비자 피해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적자 회사를 반복적으로 인수를 하고 있을 때는 이런 점들도 조사해 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기업 결합을 제한하는 이유로 경쟁 제한성 외에 다른 기준을 두고 있지 않다.
한기정 위원장도 기업결합 심사시 재무 건전성까지 고려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유보적 태도를 나타냈다.
한 위원장은 "현행법하에서는 경쟁제한성 이외의 요소를 가지고 기업결합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외부의 법제를 봐도 경쟁제한성 이외 재무건전성 등을 고려해 기업 결합 여부를 심사하는 해외 주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위원장은 "다른 나라에서는 재무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심사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심사하면 국제적인 정합성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jhh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