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서킷브레이커'는 처음이라
(서울=연합인포맥스) ○…사이드카·서킷브레이커
'해태' 같은 단어가 아닐지.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동아시아 상상의 동물이지만, 우리 곁에는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3시 56분부터 20분간 코스닥시장의 매매 거래가 중단됐다. 서킷브레이커다. 사이드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조치로, 이는 지수가 전일 종가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할 경우 발동된다.
서킷브레이커가 시행된 최근 사례는 2020년 3월 13일, 19일이다. 팬데믹 패닉에 증시가 휘청인 시기였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같은 날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이 시기 2거래일뿐이다.
코스피 역사상 첫 서킷브레이커는 스스로에게 '경험했다'고 일컬어지기 어렵다. 국내 증시에서 처음으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약 24년 전인 2000년 4월, 3살의 유아가 세상에 존재만 했었던 때다.
그나마 4년 전 팬데믹 상황, 금융 상식 단어장에서 곁눈질로만 본 듯한 용어가 온 언론을 덮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이른 점심을 먹다 본 부대 식당 TV에는 온통 서킷브레이커 이야기뿐이었다.
"저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뭔진 모른다. 그런데 뭔가 심각한 것 같다."
알쏭달쏭한 선임의 대답과 함께, '그저 그런 뭔가 문제가 있는 날'로 남았다.
그리고 다시 오늘. 첫 서킷브레이커 발동으로부터 24년이 지난 8월 5일, 국내 증시는 또다시 시퍼렇게 물들었다. 현금 비중을 늘려야 한다느니, 매수 기회라느니 수많은 엇갈린 아우성들이 메아리치고 있다.
'곱버스도 국장이다'라는 유튜브 세상의 유행어 하나가 오늘따라 단순한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모두가 속수무책이다.
어느 하나 만족스럽게 납득할 만한 구석이 없다.
고용 지표 하나로 이렇게까지 과도히 하락할 일인가 하는 억울함 때문일까. 정말 경기 침체가 오려는건가 쉬이 믿어지지 않아서일까.
단기 급락을 맞이하는 투자자에겐 그저 쏟아져 내리는 매도세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24년 전의 스스로와 마주해 묻는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여전히 달라진 건 없다. 3살의 유아든 27살의 기자든 서킷브레이커를 대하는 방식은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시, 그때의 코스피와 지금의 코스피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서쪽에서 날아온 악재, 와르르 무너진 시장. 모든 상황에 묘한 기시감이 남는다는 푸념이 유독 씁쓸하다. (투자금융부 박형규 기자)
hg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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