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줄여라"…금융당국, 주담대 늘린 은행에 사실상 '패널티'
가계부채 관리 방향 튼 금융당국…은행 자체 한도 관리 유도
은행권 이자장사 방조 비판 의식도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정원 기자 = 금융당국이 은행 가계대출에 대한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부과와 위험가중치 상향 조정 등 건전성 추가 규제 카드를 꺼내 든 것은 금리 레벨을 조정하는 것만으론 현재의 가파른 가계대출 증가세에 변화를 주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으로 대출 공급 조정에 나섰지만, 가계대출이 생각만큼 줄어들지 않자 건전성 잣대를 들이대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튼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이자장사'를 방조했다는 비판과 책임론이 확산되는 것을 염두에 둔 변화라는 해석도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규모는 지난 7일 기준 718조97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 715조7천383억원과 비교하면 가계대출은 일주일만에 2조3천592억원이 증가했다.
주담대 증가세는 더 심상치 않다.
지난 5~6월 각각 5조3천억원, 5조8천억원씩 증가했던 5대 시중은행 주담대는 지난달엔 7조5천947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이달 들어선 일주일 새 1조4천203억원 늘어났다.
특히, 두 달 밀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이 내달부터 본격화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달 말로 갈수록 영끌·막차 수요는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해 유입된 주담대를 제외하더라도 전체 주담대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다는 게 업계 분위기다"며 "서울 주요지에선 3년 전 최고가 거래가 이젠 바닥이 될 수 있다는 심리가 확산하면서 다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를 키우는 분위기다"고 했다.
그간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가산금리 인상으로 주담대 증가세에 대응하도록 지도해왔다.
주요 은행들은 가산금리 세 차례 이상 조정하며 주담대 전반의 금리를 높이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아직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5% 안팎이었던 주담대 금리 레벨이 2% 후반대로 내려온 점이 수요를 자극했다고 본 셈이다.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은 지나치게 낮은 주담대 금리가 주담대 수요를 자극한다고 봤고, 은행권은 가산금리를 앞다퉈 높이면서 인위적으로 주담대 금리 상단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 또한 벤치마크 금리가 내려오면서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산금리를 높인다는 시그널은 결국 받을 수 있는 주담대 총량을 줄이거나, 금리 수준이 높으니 불필요한 '영끌'은 자제하라는, 사실상 금리를 통해 차주들의 선택권을 일부 제한하겠단 의미였다"며 "하지만 주담대 금리레벨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가산금리를 높인 은행들의 수익성만 챙겨 준 꼴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 차주들의 선택을 제한하려던 기존 스탠스에서 은행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튼 것도 이러한 영향이라는 평가다.
대출 총량제와 같은 거친 방식보다는 은행권 자본비율에 대한 부담을 키워 자체적인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당국은 2021년에 이어 은행별 대출총량 한도 규제를 다시 도입하는 안도 검토했지만, 당시 한도가 소진된 은행들이 급작스럽게 대출을 중단하고 대출 한도가 남은 은행으로 수요가 몰리는 등 각종 부작용이 심각했던 것을 고려해 다른 방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건전성 추가 규제는 지난 2018년 은행의 고(高) 담보인정비율(LTV)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를 35%에서 7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결국 주담대에 대한 CCyB와 위험가중치에 변화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관련 리스크 관리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취지다"며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가 급격히 커지고 있는 만큼 조만간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명확한 시그널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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