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대출제한 페널티' 경고…은행권 '발등에 불'
우리은행, 올해 목표대비 대출 실적 비율 가장 높아
연말까지 신규 가계대출 대폭 축소 불가피…2021 대란 재현 우려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윤슬기 기자 = 금융당국이 과도하게 가계대출을 취급한 은행에 내년에 대출 한도를 대폭 줄이는 '페널티'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이달까지 내준 가계대출이 올 초 세운 경영계획을 이미 넘어선 상황에서 지침도 없이 갑작스러운 고강도 규제가 추가되자 은행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사실상 올해 연말까지 신규 대출을 중단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서향후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분주하다.
◇우리은행 목표대비 실적비율 376.5%…농협銀만 미달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올해 경영계획상 가계대출 목표치를 맞추지 못한 은행에 대해 내년 계획 수립 시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리 목표치를 낮추기로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에 '더 센 개입'을 예고한 지 이틀 만이다.
금감원은 이미 주요 은행들이 올해 가계대출 목표치를 넘어서는 등 관리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다며 '적절한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이 연초 당국에 제출한 올해 가계대출 목표 증가액은 9조3천억원이다.
그런데 이달 21일까지 이미 14조1천억원으로 목표치의 150.3%까지 늘어났다. 연간 환산으로 하면 200%에 달한다.
금감원 기준에 맞추려면 4대 은행은 연말까지 대출 잔액을 무조건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평균 DSR 목표를 올해보다 낮춰야 하고, 결국 신규 대출 한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목표치를 많이 초과한 은행일수록 DSR 목표치는 더 낮아지게 된다.
우리은행은 연초 경영계획 대비 대출실적 비율이 376.5%에 달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가계대출을 전년보다 2천억원 늘어난 115조4천억원 공급하기로 했지만, 이달 21일까지 잔액이 8천억원이 늘어난 116조원이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기금 주수탁은행인데 정책성 대출이 수치 산정에서 제외되고, 타 은행보다 올해 대출 목표치를 적게 잡은 탓에 모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불리해졌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은 올해 가계대출을 작년보다 3조3천억원 늘려 151조8천원까지 공급하기로 했는데 이미 152조9천억원어치를 내줬다.
신한은행도 올해 가계대출 목표치보다 1조8천억원이나 더 많이 내줘 계획대비 실적 비율이 155.7%였다. 하나은행도 대출잔액이 목표치를 9천억원 초과했다.
5대 은행 중에는 NH농협은행만 실적 달성 비율이 52.3%로 올해 목표치보다 적게 공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총량 규제…수치 맞추기만 급급"
은행들은 금감원 지침대로라면 사실상 하반기 가계부채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페널티를 받지 않으려면 상환보다 신규대출 규모를 현저히 줄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이 과정에서 실수요자 피해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벌써 일부 은행들은 전세자금대출,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 한도까지 제한하고 나선 상태다.
금감원은 은행별로 매월 1조원 안팎의 상환이 발생하는 만큼 이 부분은 실수요자에게 대출을 내주면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은행들은 영업점 현실을 모르는 규제일 뿐이라며 답답해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정부가 최근 주담대 증가가 다음달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앞둔 막차 수요가 아니라 집값 상승과 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것이라 다음달 갑자기 빠질 수 있는 그런 형태가 아니다"라면서 "당국 지침에 맞추기 위해 대출 심사에서 문제가 없는 사람의 한도도 줄여야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2021년 '대출 절벽' 사태가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정부는 대출총량 규제를 도입했는데 실수요자들이 대출 한도가 남는 은행으로 몰려가고 이사를 못 가는 일들이 벌어진 바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금 문제가 되는 일부 지역 때문에 은행권 전체에 사실상 대출총량 한도를 부활시키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였다는 수치를 만들어 내기에 급급한 처방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계대출이 한국경제 뇌관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은행을 옥죄는 방식으로 부동산 시장 상승세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정교하고 다양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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