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은행 출신 계열사行 축소 검토…'회전문 인사' 차단
계열사 임직원 인사 사전합의제 폐지 이어 회장 인사권 축소
계열사 CEO·임직원 인사 폭 확대될 듯…내부 출신 중용 주목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우리금융그룹이 지주 또는 은행 임직원을 자회사로 내려보내는 '회전문 인사'를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에 대한 수백억 원대 부당 대출 과정에서 저축은행, 캐피탈 등 자회사로 이동한 은행 출신 인사가 핵심 역할을 하면서 인사 관행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임종룡 회장이 자회사 임원 인사에 관여하는 '사전합의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은행 중심의 폐쇄적인 인사 체제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면서 우리금융 전반의 인사에도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 출신이 사고 키웠다…느슨한 조직문화 '다잡기'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우리은행 출신 임직원을 비은행 계열사로 인사 이동하는 사례를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지주 차원에서 계열사의 자율 경영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은행 출신의 자회사 이동을 제한하는 것도 살펴보고 있다"면서 "향후 신설될 윤리경영실 등을 통해 어떤 식으로 축소할지 세부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건이 제왕적 금융그룹 회장의 과도한 권한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지배구조 및 내부통제 문화를 뜯어고치기 위한 윤리문화 쇄신안을 마련해 이르면 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임 회장은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이번 사건의 한 원인이기도 한 회장의 권한과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룹 전체 개혁을 위해 자회사 임원 선임과 관련한 사전합의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지주 회장이 우리은행 등 자회사 인사에 관여하는 통로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은행 출신 인사를 자회사로 내려보내는 관행을 최소화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지주사나 은행 임원이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로 가거나, 승진 등에서 누락된 은행 출신을 자회사 임원급으로 챙겨주는 건 우리금융 뿐 아니라 모든 금융지주에서 오랫동안 행해져 온 관행이다.
회사를 떠나야 하는 동료에 대한 배려 차원의 인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번 부당대출 사건이 계열사로도 확산된 과정에 자회사로 내려간 우리은행 출신 임직원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같은 인사 관행이 사고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금융감독원의 수시검사 결과에 따르면 부당대출을 실행한 우리금융저축은행 여신심사1부장과 우리캐피탈 기업금융본부장은 모두 우리은행 출신이다.
이들은 자회사 여신담당 직원이 이 대출에 대해 '부적정' 의견을 냈음에도 우리은행 출신인 그룹장 면담 등을 통해 대출을 실행시켰다.
이들은 부당대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전 우리은행 선릉금융센터장과도 아는 사이로 알려졌다.
전 선릉금융센터장은 손 전 회장 친인척에게 우리캐피탈의 부당대출을 알선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은행 전직 임직원이 저축은행 등 계열사에 재취업해 대출에 관여하거나 취급·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금융지주 내 구태의연한 조직문화와 느슨한 윤리 의식에서 비롯됐다"며 "부적정 대출이 계열사로 확대되는 요인"이라고 직접적으로 꼬집었다.
◇자회사에 내부출신 임원 늘어나나…연말 인사 주목
이러한 우리금융의 윤리문화 쇄신안은 이번 연말 인사부터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자회사 CEO는 물론 임원 선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금융에 따르면 14개 계열사 가운데 7곳의 CEO 임기가 올 12월 만료된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비롯해 박완식 우리카드 대표, 정연기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이종근 우리자산신탁 대표, 최동수 우리금융에프앤아이 대표, 이중호 우리신용정보 대표, 김정록 우리펀드서비스 대표 등이다.
이들은 모두 지주와 우리은행에서 본부장·부행장까지 역임하고 자회사에 재취업한 케이스다.
우리카드·캐피탈·우리종금 등 대부분의 자회사 임원도 절반 이상이 은행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실제 내부 출신 인사가 임원으로 오른 케이스는 한두 자리에 불과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전부터 각 업권별 리스크 관리 차원 등을 이유로 전문성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내부 출신 인사를 중요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지만, 우리금융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비은행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사 정책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2022년 연말 신한카드 사장에 내부 출신인 문동권 사장을 선임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문 사장은 신한카드 전신인 LG카드 출신으로 신한카드는 물론,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 최초의 내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줬다.
KB금융지주도 작년 말 인사에서 2015년 KB손해보험 출범 이래 처음으로 내부 출신인 구본욱 대표를 선임했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계열사 간 전문성을 중시해 향후 인사에서도 내부 출신들을 중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 회장의 인사 권한이 '계열사 대표'로 축소되면서 상무급 이상 임원들도 내부 출신들이 승진하는 케이스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경영진에 대한 견제 장치이자, 그룹 전체 개혁을 위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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