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대출 놓고 부처간 또 엇박자…가계대출 관리 '비상'
금융위·국토부 '동상이몽'…공급규모 확정 못해
은행 역마진 지속…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정부가 올해 디딤돌대출·보금자리론 등 부동산 정책대출 상품 공급 규모를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금융당국은 주택 관련 정책대출을 조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토교통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오히려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좀처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다.
정책대출이 작년과 유사한 수준인 55조 안팎으로 풀릴 경우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정책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은행들도 연간 가계대출 계획에 따라 정책대출을 기피하거나 실수요자 대출 문턱을 높일 수밖에 없어 연초부터 대출시장의 혼란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가계부채 관리 VS 서민주거 안정…이견 커
1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는 올해 정책대출 공급 규모를 놓고 논의 중이다.
정부는 통상 연초 대통령 업무보고를 계기로 정책대출 목표를 확정하지만, 올해는 의견 절충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추가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국토부 간 정책대출의 적정 규모를 찾는 데 이견이 있어 이달 중 논의를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다만, 전년 대비 크게 늘리거나 줄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대출은 무주택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정부가 공급하는 저금리 대출 상품으로 디딤돌 주택담보대출,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신생아 특례대출, 보금자리론 등이 있다.
작년 정책대출 규모는 신생아 특례대출 10조원을 포함해 약 50조~55조원 수준이었다.
올해도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공급될 경우 50조원 이상의 대규모 정책자금이 대출시장에 풀리게 된다.
문제는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지난 8일 '2025년 경제1분야 주요 현안 해법회의'에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올해 명목성장률(명목GDP) 이내로 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규모로 환산하면 약 60조원 정도다. 정책대출 상환액 등을 감안하면 은행들은 자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을 40조원 수준으로 묶어야 한다.
지난해 11월까지 은행권 자체 주담대 증가액이 33조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도 전년처럼 가계부채 억제책을 강하게 써야만 목표 내에서 관리 가능하다는 의미다.
정책대출을 항상 가계부채 폭증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작년 6~7월 가계대출이 폭증하자 금융당국이 은행권 대출에 각종 제한을 뒀을 때에도 정책상품은 손대지 못했다.
서민 부동산 공급을 확대하려는 국토부 간 입장차로 한 쪽만 틀어막는 꼴이 되면서 정책 엇박자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워낙 부처 간 조율이 쉽지 않다 보니 올해 정책대출은 연간 공급 규모를 확정하지 못한 채 향후 부동산 시장과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보아가며 그때그때 조절해 나가는 식으로 절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은행도 답답
은행들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팔면 팔수록 손해보는 정책 상품을 마냥 팔 수도, 그렇다고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취급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책대출 상품은 은행이 자체 재원을 활용해 먼저 저리로 내어주면 정부가 정책상품 금리와 시중금리 차를 감안해 6개월마다 일정 한도 내에서 이차 보전 해주는 형태로 설계됐다.
다만 이차보전 금액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상품 간 금리 차이를 최대 0.99%포인트(p)까지만 보전해주는 터라 은행들은 약 1%p가량의 이자 비용을 스스로 감내해야 했다.
작년의 경우 2월부터 정부의 기금 재원이 조기 소진돼 자체 재원으로 대출해줬으며, 올해도 벌써 일부 은행 영업점에선 기금 재원이 바닥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자체 재원으로 공급하면 정책성 대출인데도 위험가중치에 반영돼 건전성에 악영향도 미칠 수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이례적으로 은행의 정책성 대출 취급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은행들의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이 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국내은행의 자체 재원 정책대출이 2022년 이후 180.8% 증가하는 등 가계대출 내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은행의 기회비용 등을 감안할 때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건전성 악화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책자금대출을 줄여 가계부채 증가세 및 은행 손실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책 상품 취급에 따른 손실을 마냥 지켜만 볼수도 없지만, 국토부 눈치에 실수요자가 이용하는 상품 판매를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금융당국 수장이 공개적으로 판매를 자제하라고 언급하면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부처 간 이견으로 영업장에서 혼선이 초래됐는데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면서 "일단 지켜보면서 자체 관리를 철저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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