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권의 쿰파니스] 이춘석과 미공개 정보
(서울=연합인포맥스) 2000년 초반 주식시장을 취재하면서 참 별천지 같은 세상이구나 하고 느낀 적이 많았다. 나만 아는, 또는 소수만 공유하는 정보를 갖고 있으면 바로 돈으로 연결될 수 있겠다 싶었다. 심지어는 극소수 기관투자자만 공유하던 외국계 투자은행(IB)의 주식 매수 종목보고서가 기사로 나오면 곧바로 상한가로 치솟던 시절이기도 했다. 소위 주담(기업의 주식담당자)이 흘려주는 기업정보는 그 자체가 돈이 되기도 했다. 매일 밤 여의도로 증권맨을 만나러 오는 주담들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금융·산업 재편이 이뤄지고, IT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은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증시에 불을 붙인 측면도 있었다. 어느 기업이 망하고, 어느 기업과 어느 기업이 합쳐지고,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방향성은 무엇인지 등은 여의도 증권가에선 늘 뜨거운 주제였다. 그래서 점심이건 저녁이건 여의도 여기저기서 정보 모임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국세청과 국가정보원, 경찰, 검찰 등의 이른바 권력기관은 물론 증권맨, 기업 대관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온갖 정보를 공유하고 유통했다.
누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돈의 흐름은 달라진다. 정보는 폐쇄적일 때 유용성이 높다. 공개된 정보는 사실 정보가 아니다. 적어도 주식시장에선 그렇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완전한 '비대칭 정보'의 세계였다. 그래서였는지 IT 버블과 맞물려 대형 주가조작 사건들도 많이 터졌다. 소수가 특정 정보를 바탕으로 '쩐주'와 함께 시장에서 움직이면 사실 감당이 안 된다. 감시 레이더망이 허술하다면 얼마든지 잭팟을 터트릴 수 있다.
그러다 정부는 2002년 11월 '공정공시제도'를 도입했다. 투자자를 보호하고 주식시장의 불공정거래를 차단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상장기업은 물론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도 기관투자자 등에게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균등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정보를 제공하는 시간도 모두 동일해야 한다고 했다. 2000년 8월 미국에서 도입된 제도를 빠르게 우리 시장에도 도입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정공시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는 엄청났다. 기업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주식시장은 분명 이전과는 달라졌다. 여의도를 들락거리던 주요 기업의 주담들의 왕래도 많이 줄었다. 여전히 '지라시' 유통은 활발했지만, 이전처럼 시장을 들썩이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증권사는 물론 기업들도 공시를 잘못해 처벌받을까 몸을 사렸다. 개인투자자들은 이전보다 정보 접근성이 좋아졌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외형상 그랬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세상이 완전히 클린해지지는 않는다. 공정공시제도가 완벽하게 비대칭정보 시장을 바꿔놓을 수는 없었다. 그럴 수도 없다. 정보를 생산하는 측은 늘 있게 마련이고, 그 최초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이를 나쁘게, 또는 좋게 활용할지 여부는 순전히 그 사람의 양심에 달렸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는 평가가 많긴 했다. 특히 정보 생산과 유통의 메커니즘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과 금융사와 기업의 내부 감시 체계가 좀 더 투명하게 바뀌었다는 점은 긍정적 요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식시장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되레 더 '고도화'하는 경향성이 나타났고, 여전히 정보를 독점한 측에서의 '나쁜 짓'은 계속됐다. 여전히 지금까지. 공정공시를 우회해 특정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이 짜고 치는 거래를 하면서 가격을 왜곡하다 걸린 사례도 적지 않다. 심지어 로펌이나 회계법인의 직원들이 중요 기업정보를 활용해 장난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최근에는 대형은행의 주식 관련 직원들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하다 걸리는 일까지 있었다. 독점적 정보를 바탕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유혹은 끊이질 않았다.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당의 4선 의원인 이춘석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주식거래를 하다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주식거래만 했다면 참 염치없는 국회의원이구나 하고 한 소리 들으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상상 초월의 사고였다. 자신 계좌도 아닌 보좌관의 계좌로 거래하면서 차명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사실이라면 금융실명법을 정면으로 거스른 불법행위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의심이 강하게 든다는 점이다.
이춘석 의원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증권거래 앱에 찍힌 보유 주식은 카카오페이 537주, 네이버 150주, LG CNS 420주 등이었다. 모두 인공지능(AI) 테마주로 묶이는 종목들이다. 이춘석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를 만드는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원회의 경제2분과장을 맡고 있었다. 경제2분과는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에 대한 그랜드 플랜을 짠다. 실제 K-AI 파운데이션 모델 정예팀으로 선정된 기업에 네이버와 LG CNS가 포함돼 있었다. 호재성 미공개 정보에 누구보다 더 깊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거래를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계좌를 통해서 했다. 염치를 넘어선 정도가 아니라 범죄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 망신당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말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이 중요한 정책정보를 다루는 위치에서 충분히 범죄로 의심 살 만한 일을 저질렀다. 본인은 자진 탈당을 했고 민주당은 제명 조처했다. 남은 것은 경찰의 엄정한 수사다.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으니 본인이 한 일이 얼마만큼의 죄가 될 것인지는 잘 알 것이다. 사과하고 탈당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알량한 국회의원 자리를 보전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깨끗이 사퇴해 일반 국민으로서 경찰 조사를 받는 게 어떨까 싶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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