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극의 파인앤썰] 주가와 따로 노는 달러-원
(서울=연합인포맥스) 국내외 어떤 변수에도 좀처럼 낮아지지 못하는 달러-원 환율. 이를 두고 의문을 품는 시장참가자들이 적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현실화하고,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 순매수 등으로 증권투자자금이 대거 유입되는 상황에서도 원화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코스피는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1일 3,135를 단기 저점으로 3,200선과 3,300선에 이어 3,400선을 가뿐히 돌파하며 대한민국 자본시장에 새역사를 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은 무려 7조원에 육박하는 순매수를 기록했다.
코스피가 날아가는데도 달러-원 환율은 1,380원을 바닥으로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외국인의 증권자금 유입, 코스피 상승 등이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주식자금 유입으로 코스피가 상승하면 달러-원 환율도 낮아지고, 반대로 코스피가 하락하면 달러-원 환율이 올라가는 과거의 일반적인 패턴과 전혀 다른 모양새다. 국내 주식값은 높아지는데, 정작 국내 자산을 대표하는 원화값은 여전히 약세를 면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원화 약세를 뒷받침할 정도로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국가 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주요 선진국보다 낮다. 연합인포맥스의 국가별 CDS 프리미엄 추이를 보면 지난 17일 기준 우리나라의 5년물 CDS 프리미엄은 18.14bp 정도다. 이는 일본의 18.76bp는 물론 영국의 19.16bp, 프랑스의 34.47bp, 미국의 40.20bp보다도 낮다.
이렇다 보니 원화의 약세 현상을 다른 측면에서 찾으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미국과의 관세협상과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규모 대미투자가 대표적인 경우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원화가 다른 주요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 20일 이후 전일까지 원화는 미국 달러에 4.63% 절상됐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대한 우려가 주춤해지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반영된 영향이다. 그러나 다른 통화의 절상률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같은 기간 유로화는 미국 달러에 13.41%나 강세를 보였고, 일본 엔화도 5.90% 강세를 나타냈다. 심지어 대만 달러화와 태국 바트화도 7~8% 수준의 절상률을 기록했다.
외환시장에서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이뤄진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가 달러-원 환율 하락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금액은 8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 4천163억달러의 80%를 넘는 수준이다. 구체적인 투자계획 등이 합의되지 않았으나 대규모 대미투자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 이에 대한 불확실성이 달러 대비 원화의 약세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도 관세 및 대미투자가 순수출 감소 요인이며 대미 투자에 따른 배당소득이 이를 전액 상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아님에도 우리 정부가 미국과 관세 협상 과정에서 통화스와프를 제안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바야흐로 미국의 관세 압박이 단순히 수출입 등 무역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환율 변수 등을 통해 내수와 물가, 통화정책 등 전방위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방증이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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