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 사람들] PB의 마음·트레이더의 눈…삼성증권 '상품통' 김연태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PB(프라이빗 뱅커)로서 고객의 마음을 읽고, 트레이더로서 시장의 리스크를 봤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해본 건 제게 축복 같은 일입니다."
지점 PB로 시작해 외환·채권을 다루는 FICC 트레이더, 랩어카운트 운용역을 거쳐 이제는 삼성증권의 상품 라인업 전체를 지휘하는 김연태 상품지원담당(본부장).
고객의 니즈와 시장의 현실을 모두 경험한 그의 '360도 시야'는 삼성증권이 글로벌 대체투자 시장을 개척하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최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금융상품의 본질은 결국 '믿음'을 주는 것"이라며 "10년 투자한 펀드가 2.5배의 수익으로 돌아오는 성공 경험을 더 많은 투자자에게 안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객 이해 못하면 OUT"…상업용 부동산 부결시킨 삼성의 원칙
글로벌 대체투자는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김 본부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 상품 도입의 제1원칙은 수익률이 아닌 고객의 이해도였다.
그는 "최근 원금 손실 확률이 거의 없는 상품을 1년간 공들여 준비했는데, 내부 상품위원회에서 부결됐다"며 "이유는 단 하나, '고객이 이 수익 구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였다"고 말했다.
이런 철학은 다른 상품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됐다.
최근 시장의 뜨거운 감자였던 해외 상업용 부동산 상품은 극히 제한적으로 판매가 이루어졌다.
그는 "고객들이 아파트를 살 때 레버리지(대출)를 쓰는 건 당연하게 알지만, 상업용 부동산 펀드도 똑같은 구조라는 건 잘 모르신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내 돈부터 손실이 나는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좋은 상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깐깐함의 배경에는 그의 경험이 녹아있다. PB 시절 고객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환매 문제를 몸소 겪었고 트레이더 시절엔 레버리지와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직접 다뤘다.
그는 "블랙스톤 같은 글로벌 운용사(GP)들은 분기별 환매도 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고객들은 매일 거래하길 원한다"며 "투자자와 운용사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며 고객이 납득할 수 있는 최적의 구조를 찾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상품 수 경쟁 안해"…블랙스톤·EQT, 1등만 고집하는 이유
최근 증권업계는 '글로벌 상품 소싱 전쟁'이라 불릴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사들이 라인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와중에 삼성증권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김 본부장은 "상품 수를 무작정 늘리기보다는 정말 오래갈 수 있는 특별한 회사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삼성증권이 1등 수익률을 찾지 않는다. 위험 대비 얼마나 안정적인 성과를 최소 5년, 10년 이상 유지해 왔는지를 본다. 과거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 때 손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원칙 아래 삼성증권의 파트너 리스트는 각 분야의 '어벤져스'로 채워졌다. 대체투자 1등 '블랙스톤', PE 세컨더리 시장의 강자 '하버베스트', 유럽 프라이빗에쿼티(PE)의 맹주 'EQT' 등이 그 예다.
◇"은행 떠난 1천조 시장…개인에게 온 골든타임"
시장이 글로벌 대체투자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본부장은 "갑자기 생긴 핫한 시장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로 인해 개인에게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꼽은 두 축은 '사모대출'과 '비상장 주식'이다.
인수금융은 원래 씨티그룹 같은 대형 은행들의 고유 영역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자본 규제로 은행들이 인수금융 시장에서 발을 빼면서 생긴 1천조 원 규모의 빈자리를 블랙스톤, 아폴로 같은 운용사들이 채우고 있다.
위험한 시장이 새로 생긴 게 아니라 주인이 바뀐 안정적인 시장에 투자할 기회가 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비상장 주식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오픈AI처럼 기업가치가 수백조 원에 달하는 회사들이 상장을 늦추면서 성장의 과실 대부분이 비상장 단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는 "이제 상장 시장에만 투자해서는 미래의 성장 기회를 잡기 어렵다"며 "기관들만의 리그였던 이 시장에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비히클(Vehicle)'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조 단위 공모펀드 성공…'사모대체 대중화'가 최종 목표"
지금까지 글로벌 대체투자는 주로 초고액자산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김 본부장이 그리는 청사진은 그보다 크다. 바로 '대체투자의 대중화'다.
그는 "블랙스톤 사모대출 펀드는 일본에서 이미 조 단위 규모의 공모펀드로 출시돼 큰 성공을 거뒀다"며 "한국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전략은 초고액자산가 대상 사모펀드를 출시하고 이후 삼성자산운용 등과 협업해 누구나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공모 재간접펀드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한 선결 과제는 투자자 교육이다. 삼성증권은 블랙스톤, KKR, 아폴로의 최고위급 임원들을 직접 한국에 초청해 세미나를 여는 등 시장 저변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인터뷰 말미, 김 본부장은 10여 년 전 한 고객과의 일화를 꺼냈다.
"만기가 10년짜리인 상품에 투자하시면서 고객분이 농담으로 '이거 내가 살아있을 때 만기 되겠니?'라고 물으셨어요. 그 펀드가 연 15% 이상 수익을 내며 2.5배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제 그분들은 알죠. 믿고 기다리면 자본시장이 보답한다는 걸요. 그 믿음을 다시 만드는 게 제 일입니다."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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