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36년만 정면승부 나선 우지라면

2025-11-04     정수인 기자

(서울=연합인포맥스) ○…"긴 세월을 지나 체급을 키워 정면승부, 멋지다 삼양!", "이건 먹어야 해, 얼마나 기다렸다구. 고마운 삼양", "정말 오랜만에 우지라면 먹겠네".

삼양식품이 36년 만에 우지(소기름) 라면 출시를 발표한 지난 3일 오후,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신제품 '삼양1963'을 처음 선보이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쇼츠 영상 댓글 창에는 반가움과 향수를 담은 말들이 오갔다.

대한민국 최초 라면이 귀환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3일 신제품 '삼양1963'을 처음 선보이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사진촬영: 정수인 기자]

 

신제품 '삼양1963'은 삼양식품이 36년 만에 선보이는 우지라면이다. 우지라면은 1989년 이른바 '우지 파동'을 겪은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공업용 소기름으로 라면 등을 제조한다는 익명의 투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삼양식품은 시장 점유율이 급락했다. 삼양식품에 따르면 당시 삼양식품의 라면업계 시장 점유율은 60%에서 15%로 추락했고, 김정수 부회장은 당시 천여 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고 회고했다.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전신)는 우지라면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밝혔고, 수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삼양식품은 1995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우지라면은 오래도록 금기의 이름으로 남았다. 식물성 유지인 팜유로 면을 튀긴 라면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기도 하다.

 

1990년 이후 삼양식품 주가 추이(출처:연합인포맥스)

 

이번에 새롭게 재탄생한 삼양식품의 우지라면은 우지 사태가 발생한 1989년 11월 3일로부터 정확히 36년이 되는 날 열렸다.

그 사이 삼양식품은 2012년 불닭볶음면을 출시한 뒤 재기에 성공했다. 매운맛으로 세계 시장을 휩쓴 '불닭'은 현재 전 세계 90여 개 국가들에 수출되며 글로벌 K-푸드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 삼양식품은 '제2의 불닭'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양식품 누적 매출의 91%는 면스낵 사업에서 나왔으며, 매출 상승세가 주력 수출 품목인 불닭볶음면의 해외 매출 증가에서 기인했다고 설명됐다.

이런 가운데 삼양식품은 36년 만에 '우지라면 복원'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과거 대표 제품을 다시 내세운 것이다.

다만 기대와 달리 소비자 반응은 엇갈렸다. 완전한 복원은 아니라는 지적이 컸다. 이번 신제품에는 우지와 팜유를 황금비율로 섞은 골든블렌드 오일이 사용됐다. 매운맛을 강조해 기존 우지라면과는 맛이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가격이 부담된다는 반응도 있다. 신제품 가격은 마트 정상가 기준 개당 1천538원이다. 채혜영 삼양식품 삼양부문장은 지난 3일 열린 신제품 품평회 자리에서 "팜유와 우지의 원료비만 놓고 봤을 때 우지의 원료가 시세에 따라 변동은 크나 2배 이상 비싼 원료가 맞다"며 "원가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삼양식품은 이번 신제품의 중심 소비층을 20·30세대로 잡고, 서브 타깃을 우지라면을 기억하는 현 50대 이상의 세대로 잡았다는 입장이다.

36년 만의 정면승부는 삼양식품이 과거를 넘어 현재와 마주한 선언이다. 암울했던 역사를 딛고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는 행보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다. 다만 '기억의 맛'이 오늘날 소비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삼양식품의 도전에 시장의 평가가 남았다. (산업부 정수인 기자)

si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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