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고령 사회 일본은 어떻게…'다양한 옵션과 유연함'
(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정치권에서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화한 가운데 우리보다 앞서 고령 사회에 직면했던 일본의 대응 사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정년 연장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기업 등 주체들이 적응할 시간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임금 체계를 노사가 다양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보한 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65세로 고용 연장…20년 넘은 프로젝트
우리보다 훨씬 앞서 고령 사회에 돌입한 일본의 노동자 고용 연령 연장 과정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장기 프로젝트'로 요약할 수 있다.
일본이 65세로의 고용 연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고령자 고용의 안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2000년 10월부터 정년 인상 등에 따른 '고령자고용확보조치 도입의 노력의무화'가 시행됐다.
65세까지의 고용이 법적인 의무화는 아니고, 이에 준하는 노력을 기업이 기울이도록 했다.
이어 2004년에는 고령자고용확보조치의 법적 의무화를 결정하면서 2006년부터 시행하도록 유예 기간을 뒀다.
또 계속 고용을 제공해야 할 대상 직무 등을 사업주가 취업 규칙이나 노사 규정에 따라 선별할 수 있는 대상자 한정 의무화가 우선 시행됐다.
사업주의 선별 없이 희망하는 직원 전원을 계속 고용하도록 하는 조치는 2013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또 계속 고용 의무의 적용 대상 연령은 3년마다 1세씩 상향 조정해 2025년 65세에 도달하도록 구조를 짰다.
고령자 고용 확보 조치의 법제화 이후 의무적인 계속 근로 제공이 시행되는 데만 12년, 65세로 계속 근로 연령이 최종 확대되는 데까지는 무려 25년의 기간이 소요된 셈이다.
이 과정을 통해 사업주를 비롯한 경제 주체들은 충분한 적응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본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70세로의 근로 연령 확대도 이와 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21년부터 70세까지의 취업 기회 확보 조치의 '노력의무화'를 시행 중이다.
◇다양한 '옵션' 가능…유연함도 성공 요인
일본 근로자의 법적인 '정년'은 여전히 60세다. 대신 원하는 근로자는 누구나 65세까지 고용을 연장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일본의 '정년 연장'은 사실은 법적 정년이 아닌 근로 기간의 연장이다.
그런 만큼 일본 사업자들은 노사 합의를 통해 다양한 옵션으로 직원들에게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우선 말 그대로 정년 자체를 65세로 늘릴 수 있고, 아예 정년을 폐지할 수도 있다. 또 퇴직 후 재고용 형태로 계속 근로를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67.4%는 퇴직 후 재고용 형태로 계속 근로를 제공하는 중이다. 정년을 연장한 비율은 28.7%, 정년폐지는 3.9%를 차지했다.
일본은 2021년부터 시행한 70세까지의 취업 기회 확보 조치도 65세까지의 경우와 같은 경로로 진행 중이다.
현재 노력 의무화 단계에 있는 70세 취업 기회 확보의 경우 정년연장이나 폐지, 퇴직 후 재고용은 물론 관계회사(65세까지) 혹은 아예 타 기업(65~70세)에서의 취업도 계속 고용 제공으로 인정한다.
또 사업주가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에 종사하거나, 사업주가 자금을 제공한 단체의 사회공헌사업에서 일하는 것도 고용에 포함된다.
기업과 근로자가 협의를 통해 상황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근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셈이다.
일본 기업들이 대부분 선택하고 있는 퇴직 후 재고용의 경우 엄밀히 보면 비정규직으로 재취업인 만큼 임금의 감소도 뒤따랐다.
다이와종합연구소의 지난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계속근로 이후 임금이 감소했다는 근로자는 약 80%에 달했다. 이 중 40% 이상 감소했다고 답한 근로자 비중이 약 40%에 달할 정도로 감소 폭도 적지 않았다.
임금 감소분의 일부는 정부가 보전한 점도 일본에서 근로 기간 연장이 무리 없이 정착하는 데 역할을 했다.
일본 정부는 고용보험을 재원으로 60세 시점에 비해 임금이 25% 이상 감소한 근로자에게 월급의 최대 15%(올해 4월부터는 10%)를 최장 5년간 지급하고 있다.
또 사업주에게도 고용추진조성금, 노동이동지원조성금, 고연령근로자 처우개선촉진 조성금 등 세분화된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경험은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근로 기간을 대폭 늘리는 대신 임금 체계의 조정과 이를 뒷받침해줄 정부의 지원이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오삼일 한은 고용연구팀장 등은 보고서를 통해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만 연장할 경우 청년층 고용 감소와 같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법적 정년연장보다 임금체계 개편을 동반한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중심으로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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