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임금 조정없이 가능할까…갈등 변수 잠재

2025-11-10     정지서 기자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더 오래 일하는 사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며 정년연장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사회적 대타협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고령 인력을 활용해 노인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크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임금구조의 현실을 고려하면 숱한 갈등 요소들은 내포돼 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법정 정년은 1991년 '고령자고용촉진법' 제정 당시 60세 권고 규정으로 시작됐으나, 2013년 이를 개정하며 지난 2016년부터 '정년 60세'가 단계적으로 의무화됐다.

제22대 국회에서 이를 연장하기 위한 다수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계류돼있다.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 간의 연계를 비롯해 임금체계 개편, 사업체의 규모와 업종별 특성에 따른 임금과 근로 시간 조정 맞춤형 정책 지원 등 다양한 범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태다.

이에 현재 정부와 여당은 대선 공약에서 법정 정년 65세를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연내 입법하고 범정부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자 '회복과 성장을 위한 정년연장 TF'를 구성해 노사와 시민사회의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노사 간 견해차가 큰 영역은 임금구조 개혁이다.

경영계는 정년연장과 맞물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개편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로서는 임금 조정 없는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공서열형 임금과 양극화된 노동시장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속연수 프리미엄이 가장 높은 국가다.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날 때 임금 상승률이 OECD 평균의 두배를 초과한다.

이 같은 임금구조는 고령 근로자의 고용 유지 비용을 높여, 정년연장 논의에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고용 경직성을 심화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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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일수록 구속력이 심하다.

법상 임금체계가 강하게 작동하는 300인 이상의 사업장, 정규직 근로자에게 정년연장의 혜택이 집중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기업에서는 50대 이후 고임금 근로자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자 정년을 철저히 지키기 마련이다.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사업체의 규모나 노동자의 연령과 상관관계가 낮아 법상 정년과 무관하게 변화 없이 임금이 정체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중소기업에서는 법적 정년이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공형 임금체계,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청년층의 양질 일자리 부족 등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오지윤 명지대 교수는 "정년연장은 자칫 대기업에서 현재 재직 중인 노동자들에게 편익이 극대화될 수 있다"며 "신규 일자리 창출 여력을 줄여 청년층의 양질 일자리 진입 기회를 축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된 노동 시장에서 대기업 정규직에 집중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하에서 구조적인 개편 없이 정년만 연장하면 고용시장의 양극화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 교수는 "현재의 임금체계를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전환해 연령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을 완화하고, 임금과 생산성의 연계성을 강화하지 않는 한 민간 대기업의 신규 고용 여력은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고령 근로자의 직무를 재설계해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적정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년연장을 청년 고용 확대와 연계하는 제도적 장치도 병행되어야 하며, 고령 근로자 고용 유지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세제 혜택, 직무급제 전환에 대한 기업 지원 강화, 세대 간 통합적 조직문화 조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종합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오 교수의 주장이다.

◇ '소수'를 위한 정년연장…중장년 노동수요 늘려야

국가데이터처의 2023년 경제활동인구 조사 고령층 부가 조사에 따르면, 64세 남성 임금 근로 경험자 중 생애 주직장 정년 퇴직자 비중은 26%다. 64세 여성 임금 근로 경험자는 단 7%뿐이다.

이는 곧 대한민국에 비정규직 비중이 매우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2022년 기준 55~64세 임금근로자 중 임시고용 근로자의 비중은 남자 33.2%, 여자 35.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OECD 평균은 남자 8.2%, 여자 9.0%이다.

이처럼 정년 연장의 혜택이 '소수 근로자'에게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재 상황에서 추가적인 정년 연장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갖는 정당성이 부족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중장년층의 조기 퇴직과 여성의 경력 단절을 보여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기업과 같은 사용자의 연령과 성별에 대한 비합리적인 선호가 맞물린 결과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중장년층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노동 수요 자체가 부족해서다.

이는 또다시 정규직 임금이 갖는 경직성과 과도한 연공서열형 임금구조가 배경이 된다.

물론 고용 보호와 정년을 전제로 한 장기계약은 근로자의 이직률을 낮추고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끌어내 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노동시장 측면에서는 중장년 정규직 노동 수요를 전반적으로 낮추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만약 중장년층이 어떤 이유에서든 기존 직장을 이탈하게 되면 재취업으로 이어지기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한요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미국은 고용 보호가 약한데도 우리나라보다 생애 주기적 근속연수가 길게 확보되고 있다"며 "이는 연공 서열과 관계없이 개별 근로자에게 생산성 평가에 기초한 임금을 지급해 해고 유인 자체가 작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 연구위원은 "경영상 위기로 해고하더라도 일시 해고나 재고용을 통해 고용 관계를 이어 나가는 비중도 높다"며 "제도적 힘에 의한 안정성보다 시장의 힘에 의한 안정성이 중시되고 있어 정년 연장의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일각에선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정규직의 임금 연공성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력 10년 안팎의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하는 일정 기간 이후 연공 서열에 의한 임금 상승을 제한하고 직무와 성과에 따른 임금 상승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비정규직의 경우 지금보다 더 강력한 고용 보호를 위해 불안정성을 줄여야 한다는데도 힘이 실린다.

정규직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비정규직의 계약 종료 비용을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해 고용의 지속성이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년 연장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매우 많다"며 "이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의 논의를 넘어서는 수준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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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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