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금] AI 채권 헤지 전략 고심하는 월가

2025-11-10     진정호 기자

(뉴욕=연합인포맥스) 지난주 시장 참가자들은 오픈AI의 '이기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픈AI의 사라 프라이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인공지능(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사모펀드와 은행, 연방 정부의 보증(backstop)이 결합한 새로운 금융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막대한 규모의 AI 관련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면서 미국 연방 정부의 채무 보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를 두고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프라이어는 발언을 철회했고 샘 올트먼 CEO도 해명에 나섰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오픈AI가 막대한 자금으로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음에도 갈 길은 먼 반면 현금 흐름은 메말라가고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월가는 보는 분위기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는 오픈AI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오픈AI보다 여건이 훨씬 낫지만, 그들조차 당장 대규모 현금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빅테크들은 AI 투자 목적의 회사채를 올해 9~10월 두 달간 총 750억달러 규모로 발행했는데 이는 2015~2024년의 연평균 320억달러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전례 없는 현금 확보 전쟁이다.

이 과정에서 월가의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은행 등은 복잡하게 얽혀들어 가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채권과 대출, 신용 라인 개설 등으로 재원을 다각화하는 가운데 브로커리지 기관들도 익스포저(위험노출)를 방어하는 전략을 짜내느라 머리가 아픈 상황이다.

현재 월가에서 가장 손쉽게 거론되는 전략은 '합성 위험 전가(SRT)' 전략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는 도이체방크가 AI 인프라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제공하면서 헤지를 위해 SRT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SRT 전략은 금융기관이 보유한 대출 포트폴리오나 신용자산의 위험을 파생상품 구조화를 거쳐 외부 투자자에게 전가하는 거래 방식이다.

가령 은행이 특정 기업에 10억달러의 대출 채권을 갖고 있다면 이 대출 중 일부 손실을 보전해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계약을 헤지펀드 등 외부 투자자와 체결하는 식이다. 은행은 외부 투자자에 보험료를 지급하지만 손실이 발생하면 헤지펀드가 계약상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AI 투자 목적으로 조달한 자금은 대부분 무담보 선순위 채권이나 프로젝트 파이낸스 대출 형태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알파벳 등 AAA~AA 등급의 견고한 신용도를 가진 회사들은 신용 리스크가 낮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메타나 오라클처럼 부채가 대폭 증가한 기업들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로 묶여도 시장에서 인식하는 위험도가 다르다. 부채 부담으로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나 재무부담 증가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오라클의 CDS 프리미엄 추이는 시장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연합인포맥스의 CDS 프리미엄 추이(화면번호 2498)에 따르면 오라클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 9월 중순 14.39로 올해 최저치를 기록한 뒤 11월 초 33.52까지 급등했다. 오라클이 AI용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18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오라클의 경우 단기적인 신용 악화 가능성으로 채권 보유자와 대주단의 헤징이 가속화할 수 있다"며 "오라클 5년물 CDS를 매수해 익스포저를 보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라클의 CDS 프리미엄 추이
[출처 : 연합인포맥스]

월가 금융기관들은 이와 함께 신용 한도 관리와 이자율 스와프, 신디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신디케이션은 공동 주선 형태로 딜에 참여해 위험을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메타가 올해 30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때 10여곳의 공동 주간사가 붙은 것도 위험 분산 차원이다.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 AI 거품이 터졌을 때 연방 정부의 구제금융을 노린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월가의 중형 헤지펀드 매니징 디렉터는 "신디케이션으로 들어가면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중 상당수가 익스포저를 갖게 되는 셈"이라며 "이들의 자산이 부실화하면 미국 금융체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상황이 발생하면 연방 정부는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빅테크들의 채권 부실 위험이 CDS를 통해 민간으로 흘러 들어가면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시스템 리스크가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은행으로부터 CDS를 매입한 헤지펀드들이 다시 그 위험을 재증권화해 투자자들에게 넘기는 '이중 구조화 거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이던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재림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일종의 숨겨진 레버리지 리스크라는 것이다.

영국 잉글랜드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지금까지 AI 붐은 주로 증시에 국한됐으나 이제 대규모 부채 조달이 본격화하면서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게 됐다"며 "이 주제는 매우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향후 전개의 불확실성도 크다"고 경고했다. (진정호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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